오래된 홍콩 영화를 보면 베란다에 알록달록한 빨래로 가득 찬 누런 아파트 사이를 비행기가 굉음을 내면서 아슬아슬하게 착륙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필자가 처음 주재원으로 거주하러 간 26년 전 홍콩의 첫 모습이기도 하다. 그 오래전부터 높다란 건물에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쇼핑, 볼거리로 관광객을 유인한 곳이기도 하고, 광둥 음식과 전 세계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에게는 쇼핑의 도시, 관광의 도시이지만 홍콩은 아시아 최대의 금융도시이면서 중개무역 도시이기도 하다. 현지에 거주하면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비싼 임차료로 인해 고통받는 고물가 도시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이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와 잘 어울리는 높은 빌딩숲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녹지 관리가 잘된 홍콩은 현지 주민에게 하이킹 및 바비큐의 도시이기도 하다. 홍콩섬과 주룽반도, 신계, 란타우섬 지역엔 난이도별로 선택할 수 있는 산행 코스가 있고, 공원엔 바비큐를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잘 갖춰져 있는 등 며칠짜리 관광 코스나 출장으로는 알 수 없는 매력이 넘친다.
홍콩은 언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영어와 중국어가 함께 공용어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본래 홍콩인과 중국인 사이에 소통이 어렵다는 말도 있었다. 중국어는 성조(글자마다 다른 음높이)가 4개이고 간체자(간소화한 한자)를 쓰는 반면, 홍콩 광둥어는 8성 번체자(우리가 쓰는 한자)를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홍콩 학교에서 중국어를 많이 가르치고, 활발한 인적 교류로 인해 의사소통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전시회 참가나 거래처 방문 등 홍콩을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전에 살던 동네의 식당에 간다. 가족과 함께 갔던 쇼핑센터에서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이런 홍콩이 언제부터인가 나에겐 고향 같은 곳,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을 근거지로 해서 동남아 출장과 여행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가족에게도 홍콩은 제2의 고향이 됐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국가 간, 지역 간 이동 제한이 지속되고 있다. 거의 매주 해외 출장을 다녔던 나로서는 이런 이동 제한으로 인해 올스톱된 관광 및 전시산업, 각종 무역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
홍콩은 작은 도시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좁은 거리와 습한 지역인 탓에 건물 도색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그림으로 설계되는 곳이다. 이제 서울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도시 전체의 조화를 고려한 도시 개발로 매력을 더해가고 있다. K팝을 시작으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K뷰티뿐만 아니라 K패션을 비롯해 한국의 음식, 디자인이 세계인을 끌어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세계인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