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기성 세대, 박원순 사건에서 최후의 저항…뒤로 물러서야"

입력 2020-07-15 11:00
수정 2020-07-15 11:05
유창선 시사평론가가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한 시대가, 한 세대가 가고 있다"고 논평했다.

유 평론가는 14일 SNS에 "요즘 박원순 시장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고인의 성추행을 거론하는 입을 막으려는 움직임들이 예상보다, 그리고 상식보다 훨씬 강하다"며 "피해 여성을 향한 2차 가해는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평론가는 "페이스북에서 수천명씩 ‘좋아요’를 누르며 동조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면 다 멀쩡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세월호 리본을 올려놓거나 정의, 약자, 사람, 배려…. 그런 말들을 즐겨쓰는 사람들"이라며 "하지만 피해 여성의 고통에 대해서는 예외"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라고 꼬집었다. 유 평론가는 "'사람' 보다는 '진영'이 중요했다"며 "너무 많이 얽히고 섥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과 인연이 있었거나 함께 일했던, 혹은 지원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 차마 그가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상황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냐며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기성 세대들이 지난 시절의 무용담을 갖고 너무 오랫동안 무대를 차지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유 평론가는 "신화는 신화일 때만 아름다운 것, 신화를 현실로 착각하고 나라를 구할 자신들만의 정의로움과 전지전능함을 믿는 데서 비극적 서사는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30 세대에게 이 사건은 ‘서울시장이라는 권력자에 의한 성범죄’일 뿐"이라며 "그들은 건조하게 사안의 핵심을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고인의 삶을 부정하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의식을 가진 기성 세대는 그것을 한사코 막으려 한다"고 했다.

유 평론가는 "그러니 이 상황은 낡은 것을 지키려는 기성 세대들의 최후의 저항인지 모른다"고 관측했다. 그는 "그래서 싸움이 이렇게 격렬한 것"이라며 "하지만 그 싸움의 승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기우는 해를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고인의 죽음와 성추행을 둘러싼 갈등을 지켜보며 얻은 나의 결론은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구나'"라며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민주화세대든 586세대든 뒤로 물러서야겠구나"라고 밝혔다. "지난 역사가 달아준 마음 속 훈장을 너무 오래 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유 평론가는"이제 그 훈장을 떼고 세상의 주인공을 다음 세대에게 맡기는 것이 삶의, 그리고 역사의 순리이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늘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가 류호정·장혜영 두 청년 의원의 조문 거부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며 "마치 아이들이 학교가서 저지른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엄마의 모습 같았다"고 꼬집었다. "청년 정치인을 키우겠다는 건지, 어린 아이 취급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유 평론가는 "언젠가는 물러가야 할 세대, 기왕이면 추하지 않고 아름답게 물러섰으면 좋겠다"고 글을 맺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