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미국을 다시 읽게 하는 '코로나 미스터리'

입력 2020-07-14 17:58
수정 2020-07-15 00:18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비중은 25%에 이르는 나라. 지난주 하루 확진자가 7만 명을 넘어서며 연일 ‘세계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는 나라. 인구 100명당 한 명꼴로 확진 판정을 받은,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세계 최대 코로나 감염대국. 미국이 주인공이다.

정치·경제·군사 분야는 물론 과학·의료기술에서도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비상사태 속에 몰아넣은 지 6개월이 넘도록 유독 미국에서만 확산 속도가 가파르다.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인 텍사스주는 지난주 네 차례나 하루 최다 확진자 발생 기록을 갈아치웠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텍사스와 함께 미국 내 최상위권의 주거 및 위생환경을 갖춘 지역에서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은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한 것을 확진자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그것뿐일까. 역사학자인 엘리자베스 콥스 텍사스A&M대 교수의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 ‘미국인들은 멍청해질 자유까지 원한다(Americans want to be free to be stupid)’는 미국의 ‘코로나 미스터리’를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게 한다. 콥스 교수에 따르면 유럽 이주민들이 처음 도착한 동부 연안지역에서부터 금광 등을 찾아 개척해나간 서부지역에 이르기까지 “내 운명은 내가 지킨다”는 자결(自決)주의 DNA가 미국인 속에 깊숙하게 박혀 있다. 정주지(定住地)를 떠나 미개척 황무지에서 모험적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정부든 뭐든 ‘아는 체하는 사람들’의 충고나 간섭은 용납되지 않는다.

서부지역으로 갈수록 이런 개인주의 풍토가 뿌리 깊다. 댄 패트릭 텍사스주 부지사가 미국 내 최고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의 마스크 착용 생활화 권고를 대놓고 폄훼하며 “우리는 누구의 충고도 필요 없다”고 공언한 게 단적인 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달 말 개빈 뉴섬 주지사가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법령을 발표하자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수용 거부’ 반란이 잇따랐다.

미국인들에게 이런 ‘꼴통’의 역사는 유서가 깊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창궐하던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마스크 거부 동맹’이 결성되고 수천 명이 거리로 몰려나가 ‘개인권리 침해 반대’ 시위까지 벌였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많은 스페인독감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런 역사에서 배우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서부지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인 초기 정착지인 동부 뉴햄프셔주는 공식 모토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Live Free or Die)”이다. 일체의 간섭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반골 정신’은 50개 미국 주 가운데 유일하게 승용차 안전벨트 착용을 강제하지 않으며,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제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인들의 개인자결주의 성향은 공화당원일수록 더 두드러진다.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의 최근 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자는 76%가 대부분 일상에서 마스크를 쓴다고 응답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그 비율이 53%에 불과했다.

지금 미국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대재앙은 ‘자유로운 영혼’을 고집하는 데 따른 대가요, 인과응보다. 콥스 교수는 그런 한편으로 ‘제도’의 간섭과 군림을 거부하는 ‘개인 자유’ 추구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지속시키는 원천이라고 봤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 옛 소련과 유럽국가들이 달을 좀 더 잘 관찰하기 위한 망원경 성능 개선 경쟁을 벌이던 때, 미국은 “아예 달에 갈 수 있는 탐사선을 만들자”는 ‘문샷싱킹(moon-shot thinking)’을 현실로 일궈냈다. 아마존, 구글, 테슬라, 페이스북 등 혁신기업들이 끊이지 않고 출현해 인류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데는 기존 질서 내 안주를 거부하는 미국인들의 자유주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이 정부 주도의 방역지침을 엄격하게 시행해 ‘코로나 극복 모범국가’로 갈채를 받았지만, 틀에 얽매인 국가주의와 간섭주의 논란을 빚고 있다. 세상에 일면만의 진실은 없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