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김동연 등판론

입력 2020-07-13 17:44
수정 2020-07-14 00:55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하면 떠오르는 장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자가 청와대를 출입하던 2013년 9월.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있던 그의 부탁으로 몇몇 청와대 기자들과 오찬 자리를 주선한 적이 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는 난데없이 서류 봉투를 하나씩 돌렸다. 뭔가 했더니 본인이 언론에 기고한 칼럼들과 잡지에 실린 ‘인간 김동연의 스토리’를 모은 파일이었다. 참석한 기자들은 다소 당혹스럽고 어색한 표정이었다. 보통의 관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자리를 파하고 나오는데, 타사의 한 정치부 기자가 조용히 한마디 건넸다. “저분, 정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두 번째 장면은 2012년 2월 ‘4·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서다. 정치권에서 복지공약을 쏟아내자 당시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이 일을 저질렀다. 예산실 에이스들로만 비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여야 복지공약을 샅샅이 해부하는 게 미션이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이렇게 해서 발표된 보고서는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다. “정치권 요구대로라면 5년간 300조원가량이 소요돼 국가 재정이 재앙에 빠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결국 김 차관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어차피 옷 벗을 각오로 시작한 일이니만큼 개의치 않겠다”며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김 전 부총리는 관료 사회 내부에서도 독특한 캐릭터 소유자로 통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의도적이고, 계산적이며, 정치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첫 번째 장면이 그런 오해를 낳은 사례다. 하지만 그를 취재원으로 오래 지켜봐온 입장에선 다르게 생각한다. 엘리트 관료 사회에선 드물게 ‘흙수저’ 출신인 김 전 부총리는 자기 PR 의식이 남다르다. KS(경기고-서울대)라인이 주류였던 관료 사회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오랫동안 자연스레 몸에 밴 그만의 생존본능이라고 본다.

김 전 부총리는 합리적이지만, 자수성가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옳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재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두 번째 장면이 그런 경우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부총리를 지내면서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을 빚은 것도 일각에서 ‘자기정치’란 비아냥을 듣지만 그만의 소신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김동연 등판론이 나오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여야의 러브콜을 받더니, 이번엔 야권에서 차기 대권후보로도 거론된다. 정치권에서 그를 소환하는 이유는 ‘상품성’에 있다. 판잣집 아들로 태어나 부총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스토리가 정치 흥행요건과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올해 초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을 세운 뒤 전국 강연을 돌고 있는 그를 두고 출마 사전정지작업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지만, 그는 자기방식대로 사회 혁신운동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언젠가는 정치에 나설 거라고 보고 있다. 아니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상품성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누가봐도 다음 대선의 핵심 아젠다는 경제가 될 공산이 크다. 경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는데 재정팽창, 복지확대, 기본소득 등 경제에 부담을 주는 이슈들은 줄줄이 터져나올 게 뻔하다. 소신과 전문성, 거기다 관료 출신으론 드물게 정치적 판단력과 공감 능력도 갖춘 김 전 부총리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김 전 부총리가 도전한다고 해도 여의도 정치의 단단한 벽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새로운 실험에 도전해보는 것만으로도 정치에 신선한 충격을 던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