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전업체 다이슨의 무선청소기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킬 때 삼성전자 디자이너 출신 문재화 알앤디플러스(RND+) 대표(43)는 한국 소비자의 불만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사용자경험(UX)을 분석해 지난해 1월 내놓은 한국형 무선청소기 '오비큠'은 입소문을 타며 출시 이후 약 3만대가 팔려나갔다.
'오비큠'은 세련된 디자인과 개선된 성능을 앞세워 다이슨 무선청소기의 대항마로서 자리잡은 제품이다. 문 대표가 다이슨 사용자들의 불만사항을 조사한 결과 다이슨 청소기는 너무 무겁고, 빨강·파랑·주황 등 화려한 색깔이 화이트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주택시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 가전제품으로서 AS가 불편하고 배터리 성능이 저하됐을 때 교체도 AS센터에 보내야 해 불편하다는 단점도 드러났다.
문 대표는 "소비자 행동을 분석하니 가야할 길이 보이더라"며 "디자이너 관점에서 가볍고, 싸고, AS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청소기를 목표로 개발에 돌입했다"고 개발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해 1월 출시된 오비큠은 무게를 900g까지 줄였다. 흡입구부터 필터, 모터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직렬 디자인을 도입했고 초소형 BLDC 모터로 흡입력을 끌어올렸다. 자석 원리를 이용해 거치대에 청소기를 올리자마자 자동으로 충전이 시작되도록 설계, 언제 사용하더라도 100% 충전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가격은 25만9000원으로 저렴하면서 배터리(소비자가격 2만9000원)는 누구나 쉽게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들을 만족시켰던 것은 무엇보다 감각적인 디자인이었다. 문 대표는 "집 인테리어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을 공략할 청소기를 만들자고 계획한 게 적중했다"며 "오비큠 청소기가 나오는 집안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소비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오비큠은 지난해 2만대를 판매하며 약 21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까지 올 상반기에도 비슷한 물량이 판매됐다. 회사는 오비큠의 누적 매출이 80억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 대표는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사업을 개발하는 비즈니스맨이다. 200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휴대폰 디자인을 담당하다가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사내벤처의 초기 멤버로 활동했다. HME사업부를 5000명 이상 조직으로 키운 뒤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2012년 사표를 내고 RND+를 창업했다. 삼성전기, 지멘스, 한솔교육, 서울시 등에 디자인컨설팅을 진행했으며 진짜 자기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2018년 법인 등록을 했다. 가전제품 브랜드 '모온'을 만들고 내놓은 첫 제품이 오비큠이다. 문 대표는 현재 다음 제품으로 물걸레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를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개발중이다.
"제품 디자인에 철학을 담아야 합니다. 소비자행동을 분석해 불편함을 개선하는 가치 있는 제품을, 그 가치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계속 디자인하고 싶습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