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열심히 하신다고요?

입력 2020-07-12 18:31
수정 2020-07-13 00:06
젊은 맞벌이 부부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육아 문제라고 한다. 보육 관련 지원이 있다 해도 양육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오죽하면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 ‘삼포세대’라는 용어가 나왔을까?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나라의 앞날에 희망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일찌감치 손주를 본 친구들로부터 아이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드니 손주 봐주겠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큰아들에게 ‘아이 낳으면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덥석 했단다. 주변에서 손주 자랑을 해대는 데다 육아 때문에 혼인이 늦어지면 어쩌나 우려했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 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벌써 마음속으로는 그 결정에 동의하고 있었다. 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손주가 보고 싶었으니까.

첫 손자가 엄마의 좁은 배를 뒤로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남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돌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그 골병든다는 육아를 시작했다. 매일 변하는 아이를 보며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신기함과 즐거움이 야금야금 불어났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일까? 오래지 않아 아내의 허리 부상으로 돌봄이 중단되고 말았다. 경고받은 대로 진짜 골병이 든 것이다. 얼마 후 1주일에 사흘만 봐주는 ‘극적 조정’으로 위험한 육아가 다시 이어졌다.

어느 날 저녁 누워서 몸통을 비트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을 곧추세우고 윗몸을 일으키기도 했었지만 뒤뚱거리는 모습이 전과 좀 달랐다. 똑같은 움직임이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뒤집기를 시도하는 것을 알았다. 연신 발을 버둥대며 애쓰는 것이 적잖이 안쓰러웠다. 첫 번째 뒤집기 성공을 알리는 환성이 온 집안을 울린 것은 그러고도 며칠이 지난 뒤였다.

도대체 발버둥을 몇 번이나 쳤을까? 지켜보지 않을 때도 그랬을 테니 셈이 안 된다. 안 된다고 포기하지도 않고, 횟수를 정해놓고 빨리하려 조바심내지도 않았겠지. 어떤 아이는 빨리, 다른 아이는 조금 늦게, 또 아예 뒤집기를 건너뛰는 아이도 있단다. 우리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뒤집었다고 하는 것은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랑일 뿐이다.

더 멋있는 뒤집기를 보여주려 하지도 않았을 게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뒤집기 기술이 요구되는 씨름 선수가 돼 이름을 날리려는 욕심은 더더욱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목을 세울 때도 연신 코방아를 찧으며 애쓰지 않았던가? 이제 바닥을 기고 일어날 때도 쉼 없이 그저 될 때까지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겠지.

열심히 하는 척하며, 꼭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주변을 설득했던 이 할아비에게 열심히 한다는 게 뭔지 가르쳐준 세희야 고맙다. 얼마 전 둘째 우희가 가슴 속에 누르고 있던 울음을 세상에 토해냈다. 배우고도 실천 못하는 할아비에게 이놈은 또 무엇을 가르쳐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