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강망' 하소연하다 동학개미 됐지만…

입력 2020-07-10 17:47
수정 2020-10-06 19:07
“주식으로 올해만큼 재미 본 건 처음이다.”

40대 공기업 여성 간부인 A씨는 점심 식사 후 동료들에게 커피를 쏘는 날이 잦아졌다. 코로나19 급락장에서 과감한 베팅으로 두둑한 수익을 챙긴 데다 바이오와 2차전지 종목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어서다.

SK바이오팜이 사흘째 상한가를 기록한 지난 6일엔 상한가로 몇 주를 잡아서 다음날 400만원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은 업무시간 중 주식 투자가 불가능한 탓에 장이 열리기 전 50만원 정도 수익을 볼 수 있는 가격에 매도주문을 걸어놓고, 장이 끝나면 곧바로 결과를 확인한다. 매도주문이 체결되지 않은 날도 있지만 50만원을 벌면 다음날 커피를 쏘면서 투자 무용담을 쏟아낸다. “어젠 종가에 팔았으면 50만원 더 벌 수 있었는데…. 이제 99번만 하면 5억원 버는 거야”라는 A씨의 너스레를 동료가 “999번이겠죠”라고 바로잡는다.

A씨는 유튜브 주식 방송 마니아다. 한국경제 주코노미TV 등 웬만한 유튜브 채널은 빠짐없이 구독하면서 시장 흐름을 꿰고 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주변 사람들과 주식 투자 얘기를 하는 게 최고의 위안거리다.

주식으로 재미 보고 있다면서 웬 위안이냐고? 사실 A씨는 ‘부동산 루저’다. 본인은 공기업 간부, 남편은 대기업 부장이라 소득은 남부럽지 않다. 문제는 아파트. 별생각 없이 전세로만 살다가 ‘어어’ 하는 사이 집값이 너무 올라버렸다. 지금이라도 사라는 권유를 들을라치면 “예전 그 아파트 가격을 아는데 (배가 아파서) 어떻게 사느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런 사정으로 A씨는 주식에 눈을 돌렸고, 부동산은 청약만 노리게 됐다. 이달 분양하는 서울개포1단지 재건축 아파트가 A씨로선 마지막 사다리다. 강남에서 일반분양 물량이 대규모로 공급되는 데다 50점대 초반의 청약 가점 점수로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다만 당첨이 되더라도 정부 규제로 대출이 막혀 12억~13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어떻게 준비할지가 고민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생강망(이번 생에 강남 입성은 망했다)’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함으로 부모님 찬스, 지인 찬스 등을 총동원해볼 작정이다.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는 ‘동학개미’가 많다. 올해 증시 급락, 급등과 유동성 장세로 A씨처럼 돈을 만진 개미도 적지 않다. 하지만 수익의 절대 규모에선 주식이 부동산을 따라가기 어렵다. 부동산은 거의 전 재산을, 거기다 가능하면 대출까지 받아서 그야말로 올인하기 때문에 수익률은 주식보다 낮더라도 수익 규모는 압도적으로 크다. 주식에 부동산 투자를 하듯 올인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런 이유로 주변에 집값이 올라서 수억원을 벌었다는 사람은 흔하지만 주식으로 비슷한 수익을 올린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권리인 주식과 달리 아파트는 내가 직접 거주할 수 있는 실물자산이란 점도 투자자들에겐 더 매력적이다.

이상적으로는 부동산과 주식에 적절한 비중을 투자해야 맞다. 하지만 ‘정부 규제→집값 상승→다시 정부 규제→집값 급등’의 흐름이 계속되면서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부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내 집 마련에 자꾸 머리를 쓰게 만든다”, “집을 ‘사는 곳’으로 여기라는데, 뛰는 집값은 집을 돈으로 보게 한다”, “부동산 세금 책을 사면 정책이 바로 바뀌어버리니 금방 쓸모없게 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다가 A씨처럼 자의 반, 타의 반 동학개미가 된다. 정부의 집값 잡기가 실패하면 집을 가진 소수와 다수의 동학개미만 남게 될지 모르겠다. 그 개미가 주식으로 돈을 벌어도 “아직도 999번 남았네”라며 기뻐하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