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액 결정을 위한 심의가 노사 간 큰 입장차로 올해도 파행을 빚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소상공인들의 호소에 노동계가 “그건 정부가 책임질 일”이라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노사 간 견해차가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이럴 바엔 노사를 배제한 전문가들이 최저임금의 적정 수준을 정해주는 방식으로 결정 체계 개편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매년 반복되는 파행을 막겠다며 지난해 최저임금 결정 개편을 추진했으나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소상공인 어려움은 남의 일?윤택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6차 전원회의에서 “민주노총은 을(乙)의 연대를 이해한다”며 “힘들고 어려운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면 이들과 함께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하겠다는 취지로도 들리지만 이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앞서 열린 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 부위원장은 7일 5차 전원회의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모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잘 안다”면서도 “그러나 이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인상을 논의하는 자리지, 사업주들의 사정을 고려하는 곳이 아니라는 취지다.
윤 부위원장은 최소 시급 1만원을 주장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통계 또는 연구 결과가 없다”며 “경영계와 공익위원들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정말 걱정한다면 그건 (최저임금이 아닌) 다른 제도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공익위원 “노사 요구안 모두 비현실적”경영계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최저임금위원회가 관여할 바 아니다’는 노동계 주장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다. 임금을 줄 사람과 받을 사람을 대표해 노사가 협상하고,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양측의 의견을 들어 적정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는 방식이다.
노동계의 논리대로 사용자의 ‘주머니 사정’이 고려 대상이 아니라면 받을 사람들만 모여서 최저임금액을 정하면 되지 않겠냐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6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한 사정을 대변하고, 근로자위원은 저임금 근로자의 간절한 바람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경영계의 제시안은 한솥밥 먹는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헤아려달라”고 말했다.
공익위원들도 노동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내년 최저임금 1차 수정안으로 시급 9430원(9.8% 인상)을 제시한 노동계가 경영계의 1차 수정안(8500원·1.0% 삭감)에 반발해 회의에 불참하자 공익위원들은 10일 호소문을 발표했다. 공익위원들은 “노사가 서로의 관점만 고수하며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며 “오는 13일 8차 전원회의에는 협상 가능한 현실적 수정안을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경영계의 삭감안은 물론 노동계의 9.8% 인상안도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매년 파행 막으려면 결정체계 바꿔야”정부는 당초 지난 20대 국회에서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을 추진했다. 2018년 16.4%, 2019년 10.9% 등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자 노사 협상 방식의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전문가가 정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안은 기존의 단일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전문가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에서 대략적인 인상 구간을 정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기존의 최저임금 결정 기준인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외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여야 갈등 끝에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2020년도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2.87% 오르는 수준으로 속도 조절이 되면서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매년 비현실적인 요구안을 제시해놓고 퇴장과 복귀를 반복하는 행태는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며 “이참에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개편해 파행을 근본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