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리먼브러더스, IPO시장에서 PER 시대를 열다 [주코노미TV]

입력 2020-07-13 17:00
수정 2020-07-20 14:00


동학개미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3월, 온 국민의 관심사는 삼성전자와 상장지수펀드(ETF)였다. 이를 증명하듯 ETF는 3월 일평균 거래 대금은 6조8572억원에 달했다. 코스피 거래 대금의 67%에 달하는 수치다.

ETF의 인기비결은 상품의 다양성과 높은 접근성이다. ETF에 담지 못할 자산과 구현하지 못할 투자전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7000여개(6970개)에 달하는 ETF가 출시돼 투자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매매도 가능하다. 상장의 효과는 엄청나다. 유망한 ETF에 수천억원이 금세 몰리는 이유도 바로 상장에서 비롯된 높은 접근성 때문이다.
상장의 꽃, 기업공개
상장(Listing)이란 한국거래소가 정한 요건을 충족한 기업이 발행한 주권을 증권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행위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다. 외부 투자자가 공개적으로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기업이 자사의 주식과 경영 내역을 시장에 공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IPO를 할 경우 경영권 간섭으로 인한 경영진의 기업 지배력 약화 등과 같은 단점도 존재하지만, 불특정다수(Public)를 대상으로 신주를 모집함으로써 필요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금, 배당, 주식 발행 등에 관한 각종 특례 자격까지 부여된다.
IPO혁신의 시발점, 소매업 혁명오늘날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IPO도 20세기 초에는 굉장히 낯선 개념이었다.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은 특정 산업에 속한 회사들로 제한됐다. 이와 같은 반쪽짜리 IPO 시장은 20세기 초 불어 닥친 소매업 혁명(Retailing Revolution)과 2명의 혁신가들에 의해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1913년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최초로 자동차 생산 공정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자동차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우수성을 입증한 컨베이어 벨트는 다양한 재화 생산 공정에 투입되었고, 미국 내 재화 생산량은 급증했다. 때마침 유럽에서 터진 1차 세계대전(1914~1918)도 한 몫 했다. 종전 후 군수품 공장에서 엄청난 재화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량 생산된 재화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소매 판매점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1900년부터 약 30년간 지속된 소매업자들의 부흥기를 소매업 혁명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거대한 변화를 기회로 인식한 2명의 젊은 혁신가들이 있었으니, 골드만삭스 창업주의 아들 헨리 골드만과 리먼브러더스 창업주의 아들 필립 리먼이었다.
기존 소매업의 한계이들의 혁신을 살펴보기에 앞서 기존 소매상들이 처한 3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헨리와 필립의 혁신은 결국 이 문제점들을 멋지게 해결한 것이니까.

첫째, 소매상들은 경질자산(Hard Asset), 즉 원자재나 부동산처럼 내재가치를 갖고 있는 유형의 자산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바로 이 경질자산의 잔존가치를 합산하는 것이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기업가치 평가법이었기 때문에 제이피모건과 쿤롭앤코와 같은 당대 최고의 투자은행들은 소매업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은 철도회사나 전신·전화 회사 같은 경질자산 비중이 높은 기업의 IPO에 집중했다. 그 결과 경질자산이 거의 없는 소매업 회사에 투자하는 행위는 당시에 투기라는 오명을 썼다.

둘째, 소매업 혁명 초기에도 정작 소매상들은 대규모 자본 유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제조 회사에 어음을 발행하고 받아온 물건들은 순식간에 고객들에게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소매상들은 자금조달없이 은행의 단기 대출만으로도 그럭저럭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소매상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의 유력 은행가들 역시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소수 민족으로서의 사회적 시선에 굉장히 민감했다. 위험천만한 소매업에 투자하는 행위가 자칫 유대인들끼리의 상부상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핍에서 비롯된 혁신 의지


오늘날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설립 초기 소매상들이 발행한 어음을 중개하는 영세한 금융회사였다. 당연히 어음 중개 수수료는 IPO나 기업인수&합병 수수료보다 한참 낮았다. 골드만삭스를 제이피모건, 쿤롭앤코와 같은 일류 투자은행으로 성장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헨리 골드만은 우연히 비슷한 나이대의 필립 리먼을 만나게 된다.

필립은 리먼브러더스 공동 창업자의 아들이다. 리먼브러더스는 원래 미국 남부 앨러바마 주에서 면화를 직접 재배하고 매매하는 가족 회사였다. 이후 뉴욕이 면화 트레이딩의 중심으로 올라서면서 회사를 뉴욕으로 이전했다. 면화 재배를 통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긴 했어도 리먼브라더스 역시 당시에는 금융회사의 모습을 이제 막 갖춘 회사에 불과했다.




서로의 결핍과 성공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두 사람은 당시 태동하는 소매업 혁명에 주목했다. 둘은 나날이 증가하는 미국인들의 소득 수준에 비례해 재화의 소비와 이를 뒷받침할 소매업의 중요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내다봤다. 소매상들은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회사 규모를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IPO 시장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리하여 헨리와 필립은 소매상들을 위한 IPO 시장을 만들기 한다.

IPO의 선을 과감히 넘어 새로운 판을 짜다

경질자산이 부족한 소매상들의 IPO를 위해 헨리와 필립은 기업 가치 평가 방식 자체를 바꾸기에 이른다. 이들은 소매상들의 고유한 경쟁력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현금 창출 능력, 즉 기업의 이익이었다. 소매상들은 경질자산은 적게 보유하고 있을지언정 뛰어난 현금 창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의 총합으로 따지면 소매상들 역시 훌륭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경질자산의 잔존가치로만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던 기존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헨리와 필립은 1906년 유나이티드시가의 IPO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를 통해 해당 회사는 450만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2018년으로 환산하면 3조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은 단 한 번의 성공으로 충분했다. 소매업 혁명을 피부로 느낀 수많은 소매상들이 헨리와 필립에게 몰려들었다. 1906년의 첫 IPO를 시작으로 둘은 1924년 사업적으로 결별하기 전까지 50개가 넘는 소매상들의 IPO를 독점했다.



미국의 유명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 백화점, 1912년 울워스가 이들의 대표적인 IPO 사례다. 2018년 시어스 백화점은 경영난으로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했지만 수 십 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군림했고, 울워스는 스니커즈 판매점 풋락커로 사명을 변경해 오늘날에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1906년, 1912년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오늘날로 환산할 경우 20조원을 훌쩍 넘는다.

선을 넘은 두 혁신가 덕택에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라더스는 일류 투자은행의 반열에 올라섰다. 헨리와 필립은 소매업 혁명을 마주했고, 여기에 올라타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소매업의 번영을 이끌었다. 그야말로 금융과 산업의 완벽한 시너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새로운 산업은 초기에는 예외 없이 투기, 도박의 오명을 썼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을 넘는 회사가 새로운 산업 혁명의 과실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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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코노미, TIGER ETF
총괄=조성근 디지털라이브부장
글·출연=이용재 미래에셋자산운용 선임연구원
진행=나수지 기자
촬영·편집=김인별 PD
제작=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