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복막염 치료제, C형 간염 치료제, 항암제. 국내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이름을 올린 약물들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약물재창출 연구가 늘고 있다. 다른 치료제로 개발하거나 개발된 약을 코로나19용으로 다시 개발하는 것인데, 치료제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지난달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치료제로 개발되던 ‘GC-376’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셀리서치에 발표했다. 이들은 GC-376, C형 간염 치료제로 사용되는 ‘보세프레비르’, 암·신경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던 칼페인 억제제 등 4개의 약물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전 물질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효소인 ‘프로테아제’ 기능을 막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세프레비르는 201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C형 간염 치료제다. 논문을 통해 연구진은 “보세프레비르는 이미 적정한 복용량, 조제법 및 작용기전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한 임상시험 허가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의약품 개발을 위해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 1상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시판되는 약은 이런 과정을 일부 생략할 수 있다는 취지다. 약물재창출 연구의 장점이다.
국내외에서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활용되고 있는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는 약물재창출 연구가 성과를 낸 대표 사례다. 지난 7일 기준 국내 코로나19 중증 환자 22명에게 투여한 렘데시비르는 원래 에볼라치료제로 개발하던 것이다. 길리어드는 이 약을 코로나19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애스클래티스 제약은 C형 간염 치료제 ‘가노보’를 활용해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4상 시험에 들어갔다.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당뇨병약인 ‘포시가’로 코로나19 임상 3상을, 로슈는 류머티즘관절염 약 ‘악템라’로 임상 2·3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부광약품이 항바이러스 치료제 ‘레보비르’를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4월 14일 임상 2상을 승인받아 8개 병원에서 임상시험하고 있다. 면역항암제의 병용치료제로 개발하던 엔지켐생명과학의 ‘EC-18’도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7일 골다공증 치료제 ‘랄록시펜’의 코로나19 치료용 용도특허를 휴온스에 양도하기로 했다. 휴온스는 이르면 내달 말부터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