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결국 서울 반포 아파트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노영민 실장이 '똘똘한 한 채'인 반포 아파트를 매각하기로 하면서 다주택자인 여권 인사들도 좌불안석 처지가 됐다.
다만 2018년 다주택자 비판을 받은 김상곤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처분한 강남 아파트 시세가 당시보다 11억원 가량 오른 '학습효과' 탓에 과연 여권 인사들이 노영민 실장을 따라 일괄 처분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곤 전 부총리는 당시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37평형을 시세보다 1억5000만원가량 낮은 23억7000만원에 처분했다.
만약 김상곤 전 부총리가 아파트를 계속 보유했다면 가격은 11억원 이상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해당 아파트 동일 평형이 35억원에 거래됐다. 김상곤 전 부총리는 아파트를 매각하고도 2018년 10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런 사례에 비춰볼 때 다주택 여권 인사들이 움직이겠냐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에서는 각종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주택을 매각하는 대신 아들에게 증여했다. "집을 재산증식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역행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니 매각 대신 증여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핵심 친문으로 분류되는 윤호중 의원은 올 3월 기준 서울 서대문구 다세대 주택을 증여했지만 대신 배우자 명의로 주택·상가 복합 건물을 신규 매입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경우 지역구인 대전 서구 아파트는 가족에게 증여하고, 가족에게 증여한 아파트에 주소지만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병석 의장 측은 "서울 서초구 아파트의 경우 기자 때부터 소유해 만40년 간 실거주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재개발에 따른 관리처분기간이어서 3년 간 매매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 역시 앞서 집을 한 채 팔았지만 서울 송파구 아파트를 남기고 자신이 도지사를 맡고 있는 충북 청주의 아파트를 팔았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와 배치된다. 특히 박병석 의장의 경우 서초 아파트 시세가 4년 만에 23억원 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영민 실장, 박병석 의장, 이시종 지사 등 충청권을 대표하는 여당 정치인들이 모두 지역 주택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지자 지역주민들이 민주당 탈당계를 내며 반발하기도 했다.
진보성향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7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주택처분 서약 불이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다주택 여당 의원들의 주택처분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대 총선 다주택 후보자의 경우 2년 안에 1채만 남기고 나머지를 처분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바 있다.
경실련 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1주택 외 주택 보유자가 총 180명 중 42명이었다.
이중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의 주택처분 서약 권고대상에 속하는 투기지구?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 2채 이상을 보유한 국회의원은 12명이고, 6?17 대책 기준을 적용할 경우 9명이 늘어난 21명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참모진에게 "수도권에 집을 2채 이상 보유했다면 6개월 내에 한 채만 남기고 처분하라"고 권고했지만 대부분 지키지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달 언론사 경제부장 오찬 간담회에서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한 정부부처 고위 공직자는 한 채만 빼고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지만 본인도 지키지 않았다.
고위 공직자 가운데 최초로 "집 한 채만 남기고 팔겠다"고 공개 선언했던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여전히 다주택자다.
경실련에 따르면 수도권에 2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일부 청와대 참모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간 보유한 주택 시세가 10억원 넘게 올랐다.
여현호 국정홍보비서관이 보유한 주택 2채의 2017년 5월 시세는 13억5000만원이었으나, 올해 6월엔 30억1500만원으로 16억6500만원 올랐다. 여현호 비서관은 경기 과천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각각 1채씩 2채를 보유하고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친여 인사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참여정부 고위공직자 중에는 다주택자가 많았던 기억이 없는데 이 정부에는 다주택자가 많아 충격을 받았다"며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을) 팔라고 해도 팔지 않는 (고위공직자의) 강심장에 놀랐다"고 했다.
황규환 미래통합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직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무한하다'는 게 청와대 참모진의 인식"이라며 "집을 여러 채 가진 것 자체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21번이나 누더기 대책을 쏟아내며 서민들에게서는 집 한 채 마련하려는 꿈조차 빼앗았던 이 정권이기에 국민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해까지 서울 서초구와 송파구에 아파트 한 채씩 있었지만 송파구 아파트를 매각해 1주택자가 됐다.
'조국 사태' 당시 소신 발언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투표 당시 소신 투표했다가 징계를 받은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도 주택 매각을 통해 1주택자가 됐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