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옵티머스 사태' 대비하는 금융위

입력 2020-07-07 17:18
수정 2020-07-08 01:22
금융당국이 금융사고를 일으킨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긴급 발동하는 조치명령권의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옵티머스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 전수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부실 사례가 나오면 조치명령권을 행사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자를 대상으로 한 조치명령권의 세부 기준을 담은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7일 밝혔다. 조치명령권은 금융위가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거래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금융투자업자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다. 2007년 자본시장법 제정으로 처음 도입됐다.

금융위는 이번 개정안에서 ‘다른 수단을 통해선 투자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거래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를 조치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는 요건으로 꼽았다. 조치명령은 명확성·객관성을 담보해야 하고, 1년 이내 범위에서 최소한도로 행해져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금융위는 금융투자업자의 △고유재산 운용 △투자자 재산 보관·관리 △경영 및 업무개선 △공시 △영업 방법 △파생상품 거래 △기업어음 매매·중개 △취급 상품 △영업, 재무 및 위험 사항 등에 관해 조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사실상 금융회사의 모든 업무 영역에 대해 포괄적 조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조치명령권 발동에 필요한 세부 기준은 금융위가 정해서 고시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위는 최근까지 조치명령권 관련 세부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금융위는 2017년에서야 자본시장 개혁과제 중 하나로 ‘조치명령권 활용도 제고’를 제시했다.

당시는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담은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에 금융위는 증권사에 ELS 판매제한 명령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시행하지는 않았다. 조치명령권을 행사할 경우 나중에 적절성 등을 놓고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라임 사태 당시에도 라임자산운용을 대상으로 조치명령권 행사 여부를 검토했으나 같은 이유로 접었다.

이처럼 사문화된 조치명령권을 13년 만에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옵티머스 사태다. 금융위는 지난달 30일 임시회의를 열어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모든 영업 행위를 정지하고 관리인을 선임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조치명령권을 행사했다. 옵티머스운용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겠다며 끌어모은 자금을 장외기업 등에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자 더 이상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사모펀드 전수조사를 앞두고 조치명령권 세부 기준을 마련한 데 주목하고 있다. 230여 개에 달하는 전문사모운용사를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옵티머스처럼 조치명령권을 발동하는 사례가 또 나올 것을 대비한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모펀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옵티머스처럼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조치명령권을 발동해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