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TSMC 'EUV 혈투'에 웃는 일본 기업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0-07-07 12:53
수정 2020-07-07 13:12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인 EUV(극자외선) 공정을 앞서 도입한 삼성전자와 TSMC가 관련 제조장비를 선점하려는 경쟁을 벌이자 일본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 3위 반도체 장비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1350억엔(약 1조5014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한다고 7일 보도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1조2800억엔이었다. 매출의 10% 이상을 개발비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도쿄일렉트론이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붓는 이유는 EUV공정을 놓고 삼성전자와 TSMC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차세대 통신규격 '5G'용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삼성전자와 TSMC는 대당 200억엔이 넘는 ASML의 노광장치를 먼저 사들이기 위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노광장치와 EUV 공정에 대한 수요가 늘수록 주변 장치의 수요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반도체검사장비 전문업체인 레이저테크는 올해 3월까지 수주 규모가 658억엔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배 늘었다. 이 가운데 3분의 2가 EUV 관련 수주였다.


다른 반도체 회사들도 EUV 공정 도입을 서두르는 만큼 EUV 장비시장을 선점하자는 의도도 있다. 가와이 도시키 도쿄일렉트론 사장은 "EUV가 보급되면서 최첨단장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UV공정은 극자외선을 쬐어 5nm(10억분의 1미터)급 초정밀 반도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극자외선을 쬐는 노광장치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고 있다. 과거에는 니콘과 캐논 등 일본기업이 노광장치 시장을 석권했지만 ASML과 경쟁에서 밀리면서 EUV 장비 시장에서도 탈락했다. 반면 검사와 광원은 여전히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이 높다. 국제반도체제조장치재료협회(SEMI)와 일본반도체제조장치협회(SEAJ)에 따르면 2019년 일본 반도체 장치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31.3%로 20년째 30% 수준을 지키고 있다.

도쿄일렉트론은 실리콘 웨이퍼에 노광용 감광액을 도포·현상하는 코터 및 디벨로퍼 장비 전문업체다. 특히 EUV 공정용 양산장비는 도쿄일렉트론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포토마스크(유리기판 위에 반도체 미세회로를 형상화한 것. 포토마스크를 통해 빛을 쬐면 웨이퍼 위에 바른 포토레지스트가 포토마스크의 패턴대로 감광해 반도체 회로가 만들어진다.)에 전자빔으로 패턴을 그리는 장비는 일본전자와 도시바 계열사인 뉴플레어테크놀로지가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는 일본, 반도체 제조는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눠 맡으며 상생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도쿄일렉트론 등 반도체 장비기업들은 한국에 공장을 신설·확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