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SMIC(중신궈지)가 상하이증시 2차 상장을 통해 최대 530억위안(약 9조원)을 조달한다. 당초 시장 예상치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에 선 SMIC의 2차 상장에는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세계적인 국부펀드도 참여했다.
6일 상하이증권보 등에 따르면 SMIC는 공시를 통해 공모 가격을 주당 27.46위안(약 4660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2004년 3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한 SMIC는 이달 내에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벤처·스타트업 기업 전용 증시인 상하이거래소의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에 2차 상장할 예정이다.
SMIC는 이번 기업공개(IPO)에서 모두 16억8600만 주를 발행해 463억위안을 조달한다. 지난해 7월 커촹반이 문을 연 이후 최대 규모 IPO다. 초과배정 옵션을 행사하면 530억위안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는 당초 SMIC가 예상했던 조달액(234억위안)의 두 배가 넘는다.
시장에서 그만큼 SMIC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MIC는 공모 가격을 정하면서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는 주가를 참고했는데, 지난 3일 종가는 33.25홍콩달러(30.24위안)였다. 커촹반에 상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홍콩증시에서 SMIC 주가는 지난 한 달 새 두 배 가까이 뛰었다.
SMIC 공모에 참여한 기관투자가들도 화려하다. 29곳이 참가해 전체 물량의 50%를 배정받았다. 여기엔 GIC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정부의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도 포함됐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국유펀드인 국가집적회로(IC)산업투자펀드와 상하이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도 각각 35억위안과 5억위안을 투자했다.
SMIC의 2차 상장을 계기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자급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유 통신기업과 국유펀드가 출자한 SMIC를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도 올 들어 대만 TSMC에 의존해온 반도체 제조 물량을 SMIC에 몰아주고 있다. 이에 따라 SMIC는 지난 5월부터 화웨이의 스마트폰용 반도체칩 ‘기린 710A’ 양산에 들어갔다. 올해 말까지 주력 공정을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에서 7㎚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SMIC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연구개발과 제조 공정 업그레이드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SMIC가 올해 7㎚ 공정의 반도체 양산에 성공할 경우 올해 말 5㎚ 공정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TSMC와 삼성전자 등 선두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2년 이내로 좁혀진다.
한편 중국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이날 중화권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다. 중국 증시 벤치마크인 상하이종합지수는 장중 전 거래일보다 5.71% 급등하며 2019년 4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선전지수도 4.09% 뛰었고 홍콩 항셍지수 역시 4% 넘게 올랐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도 상승(위안화 환율 하락)했다. 이날 홍콩 역외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은 장중 0.53% 급락한 달러당 7.03위안에 거래됐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