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로켓모기지클래식(총상금 750만달러)에서 우승했다. 최종합계 23언더파 265타 성적을 적어내 2위를 3타 차로 따돌렸다. 압도적인 장타 덕을 봤다. 가장 멀리 날아간 드라이버가 377야드. 평균 드라이브 샷 비거리는 350.6야드였다. 2003년부터 비거리 등 기록을 재는 샷링크 도입 후 PGA투어 사상 평균 비거리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타이거 우즈(45·미국)가 2005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세운 341.5야드다.
디섐보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135만달러(약 16억원)를 챙겼다. 2018년 11월 슈라이너스아동병원오픈 후 1년 8개월만에 거둔 통산 6승째. 시즌 상금 449만8205달러를 모아 이 부문 2위로 도약했다. 코로나19 휴식 후 재개한 4개 대회 성적은 공동 3위-공동8위-공동 6위-우승이다. “멀리, 똑바로 왜 못쳐?”…‘퍼펙트 골프’의 힘 입증‘근육질에 집착한다’던 의심의 눈초리는 이제 경이와 찬사로 바뀌고 있다. 골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제친 ‘혁신’이라는 평도 나온다. 앞서 골프에서 금기시 되던 근육질 몸매에 대한 편견을 우즈,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 브룩스 켑카(30·미국) 등이 실력으로 보여주며 무너뜨렸다면, 디섐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들보다 1.5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로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여러 골퍼들에게 정복 당한 300야드를 넘어 디섐보가 ‘400야드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는 이번 대회 1라운드 17번홀(파5)에서 티샷으로 377야드를 날렸다. 그가 친 공의 비행속도는 196마일에 달했다. 200마일 시대가 깨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 골프채널은 “맞든 아니든 디섐보는 스스로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와 우승 싸움을 했던 매슈 울프(21·미국)는 “디섐보가 너무 잘 쳤다”고 했다. 케빈 키스너(36·미국)는 “디섐보는 골프에서 이기는 방식을 바꿔놨다”며 “그의 도전과 노력은 경탄스럽다”고 했다.
디섐보는 골프장 설계자의 의도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그는 티샷이 떨어지는 예상 지점에 놓여 있던 벙커를 훌쩍 넘겨 공을 떨어뜨렸다. 가까이 보낸만큼 쇼트게임도 수월했다. 이번 대회 ‘퍼팅으로 얻은 이득 타수’ 부문에서도 전체 1위(7.831타)를 차지했다. 샷링크 도입 후 드라이브 비거리와 퍼팅 두 가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선수는 디섐보가 유일하다. 그만의 ‘카지노 불패 이론’이 통한 것. 많은 도박꾼이 모여도 결국 확률에서 유리한 ‘하우스’가 무조건 승리한다는 이론이다. 디섐보는 멀리 쳐 놓으면 다음 샷이 쉬워져 확률 싸움에서 그가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최종 라운드에서 평균 360야드를 치며 버디 8개(보기 1개)를 낚아챘고 가볍게 울프의 추격을 따돌렸다. 울프는 이번 주 평균 326.4야드를 날리고도 디섐보 앞에선 무기력했다.
디섐보는 “남들과 다른 길을 추구했기에 내게는 뜻깊은 우승”이라며 “나는 신체에 변화를 줬고 골프 경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꿨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승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 실험을 비웃은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벌크업’을 시작해 코로나19 휴식 기간 확 몸을 불렸다. 물리학을 전공했고 같은 길이의 아이언을 사용하는 등, 물리학을 골프에 도입해 ‘필드 위 물리학도’로 불렸던 그다. 비거리 증대를 위해 에너지원인 근육량을 늘리는 벌크업은 그의 ‘2차 프로젝트’였던 셈. 작년 195파운드(88kg)였던 체중을 239파운드(108kg)까지 찌웠다.
무게의 대부분을 지방이 아닌 근육으로 채웠다. 한창 운동할 때는 하루 최대 6000~7000kcal에 달하는 식사를 하면서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 8마일(12.74km)의 유산소 운동을 빼먹지 않고 했다. 적정 무게에 도달한 후에는 하루 3000~3500kcal을 섭취한다. 식단을 들여다보면 프로틴 셰이크 7잔, 달걀 4개, 스테이크, 감자 등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고역인 식단을 그는 매일 유지한다. 그는 “다행히 프로틴 셰이크 맛을 좋아해 (식단을 유지하는 게) 딱히 어렵지 않다”며 웃었다.
트레이드마크인 ‘트위스트 스윙’을 구사하는 울프는 디섐보와 흥미로운 경합 끝에 준우승(20언더파)을 차지했다. 마지막 7개홀에서 버디 4개를 낚아챘지만 경기를 뒤집기엔 부족했다. 한국 선수로는 이경훈(29)이 10언더파 278타 공동 45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임성재(22)는 9언더파 279타 공동 53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