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고, 다른 대처…구급차 충돌에도 아반떼 차주 "괜찮다, 환자 이송부터"

입력 2020-07-06 11:44
수정 2020-07-06 11:46

접촉사고가 나자 응급환자가 탄 사설 응급차를 막고 환자 이송을 늦춘 택시 기사를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5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낸 가운데 지난 5월 유사한 사고 상황에서 구급차를 배려한 일화가 알려져 눈길을 끈다.

경기도의 한 소방서 구급대원 A씨는 지난 5월8일 오전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에 출동했다. 건물 3층에서 추락해 의식을 잃은 중증외상환자였다.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마치고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외상센터로 출발했다. A씨가 탄 차량이 먼저 출발하고 환자를 태운 차량이 뒤따랐다.

그런데 뒤따르던 환자 이송 차량이 도로상에서 고장으로 멈춰 섰다. 환자를 옮겨 태우려던 A씨는 미처 뒤의 승용차를 보지 못한 채 후진하던 도중 아반떼 차량과 충돌했다. 차에서 내려 승용차 운전자 B씨 부부의 상태를 확인한 A씨는 사과를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B씨는 "우선 환자부터 이송하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락처를 남기고 환자를 무사히 외상센터까지 이송한 A씨는 전화를 걸어 재차 사과한 뒤 자신이 사고를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B씨는 "괜찮다. 웬만하면 내가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오히려 "고생 많으시다. 신경 쓰지 마시라"고 감사 인사까지 했다.

A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려 B씨 부부에게 감사를 표했다. 직전에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현장에 다녀온 데다가 민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는데 이들을 만나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A씨는 "구급차를 몰다 보면 작은 접촉사고는 다반사지만 이렇게 마음 써주신 분들은 그리 흔치 않았다"며 "B씨와는 당시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전했다.

두 달 전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최근 서울 강동구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사설 구급차가 택시와 충돌했는데 택시 기사가 사고 처리를 요구하며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구급차에 타고 있던 환자는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당시 구급차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민적 공분에 기름을 부었다.

해당 청원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인근의 도로에서 발생했다. 폐암 4기 환자인 80대 여성 C씨를 응급실로 이송하고 있던 사설 구급차가 차선을 변경하던 중 뒤따라오던 택시와 접촉사고가 났다. 구급차 운전자가 환자의 존재를 설명했지만 택시 기사 D씨는 구급차를 막아 세우고는 사고 처리부터 하라고 요구했다.

D씨는 환자의 존재를 확인한 뒤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는 길이라고 설명했지만 D씨는 연신 "요양병원으로 가는 것 아니냐"며 "급한 환자도 아니지 않으냐"고 의심했다. C씨의 며느리 등이 "응급환자가 맞다"고 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막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상에서 10분가량을 허비한 C씨는 결국 다른 구급차로 응급실까지 옮겨졌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지 5시간 만에 숨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C씨의 아들은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에서 응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