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합법적인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번 개헌으로 푸틴 대통령은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24년부터 다시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번 더 역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일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99.01% 개표한 결과 78.03%가 개헌에 찬성했고 21.97%가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압도적 찬성률로 개헌안이 통과된 것이다.
사실 개헌안은 지난 3월 의회 승인과 헌법재판소 합헌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개헌을 위한 필수 절차는 아니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국민투표에서 지지를 얻어야만 개헌안을 발효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뜻이었다.
개헌안 통과로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영구 집권’할 길이 열렸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네 번째 임기 중인 푸틴 대통령은 72세가 되는 2024년 5기 집권을 위한 대선에 재출마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임기 6년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역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개헌안에 ‘동일 인물의 두 차례 넘는 대통령직 수행 금지’라는 조항이 있지만 푸틴의 기존 임기는 ‘백지화’하는 특별조항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한 푸틴은 기존 헌법의 ‘3연임 금지’ 때문에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에게 대통령직을 넘기고 총리로 물러났다. 2012년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에 복귀했고, 2018년 재선돼 4기 집권을 하고 있다. 만약 2036년까지 집권하면 총 32년간 대통령을 하게 돼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31년)의 기록을 넘어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푸틴은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 헌법이 대폭 개정된 건 1993년 현행 헌법을 채택한 지 27년 만이다. 전체 133개 조항 중 46개가 수정됐다. ‘러시아 우선주의’를 크게 강화했다. ‘헌법에 배치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국제기구의 결정은 이행 의무가 없다’ ‘영토 일부를 분리하려는 행동은 허용하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이 들어갔다.
지방 주지사들로 구성된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무원의 권한은 강화된다. FT는 “변화된 국무원은 국방 및 외교 분야에서 푸틴의 권력 유지를 돕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성 간 결혼 허용 불가, 최저생계비 이상의 최저임금 보장 등의 내용도 담겼다.
국제사회는 이번 개헌안 통과를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푸틴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독재세력의 권력 확대 및 연장은 서구 자유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으로 떠오를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투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러시아 작가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가 “오늘은 우리 역사에서 종말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자국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