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서 경보 울린 '中 기술 스파이', 한국은 더 위험하다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7-02 09:00
수정 2020-07-17 07:24

“일본에 있는 중국 스파이가 5만명에 이른다."

일본 우익의 시각이 짙게 배어있는 ≪미·중 新냉전의 정체-탈(脫)중국으로 일본 재생≫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일본이 중국 스파이에 무방비 상태라는 주장이다. 관점의 편향성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공산당이 통일전선 공작부 인력을 증원해 해외 공작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은 눈길을 끈다. ‘스파이는 재해·재난을 틈타 도움의 손길로 다가온다’ ‘스파이는 손자병법을 그대로 따른다’ 등 공작의 수법까지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 美 FBI, 2015년부터 中 ‘천인계획’ 수사

이 책은 미국과 중국이 5세대(5G) 통신, 인공지능(AI)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주도권을 둘러싸고 양보없는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중국의 ‘천인계획(千人計劃)’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중국이 중국인과 화교·화인(華僑·華人)을 대상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최고의 인재를 구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동을 건 국가계획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5년부터 천인계획에 선발된 인사들을 수사대상으로 삼고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FBI가 중국을 위해 일하는, 미국 국적을 가진 이공계 초(超)두뇌급 중국계 미국인들이 산업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는 내용이다. 유럽 국가들 역시 정치인, 군인, 관료, 기업인, 교수, 과학자 등에 중국이 벌이고 있는 공작에 주의할 것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국방부의 비밀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가 천인계획 참여 사실을 은폐한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미국은 이런 색출 말고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중국을 겨냥한 첨단기술 통제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 일본, 中 기술스파이 겨냥한 새 조치 내놔

미국에 이어 일본 정부도 중국의 기술 스파이를 겨냥한 새로운 조치를 강구한다는 소식이 들린다(한국경제신문, 6월25일자 국제면). 중국의 조직 및 자금이 군사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일본 대학 연구 프로젝트에 관여하거나 중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가장해 첨단 기술을 빼돌리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내놓은 조치에 따르면 2022년부터 정부기관에 연구자금을 신청하는 대학 연구실은 1) 주요 연구자의 해외 연구기관 겸직 2) 외국으로부터의 자금 지원 3 )이해상충 발생 여부 등을 공개해야 한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등이 내놓은 지침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연구실 소속 외국 국적 연구자의 연구 이력과 기술유출 방지 대책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 中 유학생 넘치는 한국은 얼마나 안전한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한국은 중국의 기술 스파이로부터 얼마나 안전하느냐’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기술 스파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에서 한국도 이미 위험수준에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인재 빼가기, 인수합병(M&A) 등 기술유출 수법은 공식·비공식, 합법·불법 채널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가 국가핵심기술을 지정하고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어 기업은 기업대로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연간 24조원의 정부 R&D 예산이 직·간접적으로 흘러들어가는 대학과 연구소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및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분석한 중국인 유학생 자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전문대 이상 국내 고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은 7만1067명이다. 전체 외국인 유학생(16만165명)의 44.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보면 서울 3만5152명, 경기 5830명 등 수도권 유학생이 4만명을 넘는다. 정부출연연구소가 모여있는 대전 지역도 3461명이다.

중국인 유학생이 1000명 이상인 대학은 17곳에 이른다. 외국인 유학생 중 중국인 비율이 작게는 32.7%, 많게는 78.5%에 달한다. 여기에는 정부 R&D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하는 대학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연세대(1772명) 고려대(2833명) 성균관대(3330명) 한양대(2949명) 서강대(1129명) 등이다. 1000명은 안 되지만 서울대도 645명이었다. 주요 지역을 대표하는 거점 국립대학의 경우 부산대 969명, 경북대 772명, 전남대 795명 등이었다. 미국, 일본에서처럼 중국의 조직 및 자금이 군사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대학 연구 프로젝트에 관여하거나 중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가장해 첨단 기술을 빼돌리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 한국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 美·日의 中 스파이 대응책이 한국에 던지는 세 가지 과제

① 대학을 매개로 한 기술유출 대응책 있는가

중국의 기술 스파이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대응책은 적어도 한국에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먼저 한 가지는 한국에서도 기술유출이 대학을 매개로 행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정부가 서둘러 명확한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내 연구자와 과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학을 통로로 한 기술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충격은 상당할 것이다. 산·학 연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물론이고, 선의의 교수와 연구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사건이 터진 뒤에 대응책을 마련하면 국가간 갈등을 키울 우려도 있다.

② 글로벌 기술협력망 조정에 대비하고 있는가

또 한 가지는 미국과 일본의 중국 스파이 대응책이 안보 동맹간 공동 대응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유학생이 미국으로 가지 못하면 선택지는 유럽이거나 일본 한국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한국 정부와 대학이 미국의 눈높이에 맞는 기술유출 방지 지침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지 않다면 미국 정부와 대학이 한국과 공동 연구나 기술 협력을 하겠느냐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글로벌 공급망 조정 얘기를 하고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글로벌 공급망 조정 차원을 넘는 글로벌 연구망이나 기술 협력망 조정일지 모른다.

③ ‘기술안보’ 글로벌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가

마지막 한 가지는 보다 근본적인 ‘안보 체제’와 관련한 것이다. ‘국방 안보’만 안보가 아니라는 것은 코로나19로 중요성이 커진 ‘보건 안보’가 잘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미·중 충돌은 경제·산업도 안보라는 시각에서 ‘기술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가하고 있는 수출규제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 때문이라고 하지만, 표면상의 이유로 무기에 대한 캐치올 통제 미흡 등 ‘안보’를 들고 나온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면상의 이유는 언제든지 실질적인 이유로 돌변할 수도 있다. 여차하면 안보를 이유로 일본이 또 다른 조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이 중국으로의 기술유출 경로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도 같은 조치를 취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일본은 경쟁국의 산업과 기술에 대해 매우 정밀하고 치밀하게 모니터링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일본의 취약점, 경쟁국의 급소를 동태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도 중국에 대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 일본 한국 등에 대해 똑 같은 방식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기술유출을 둘러싼 갈등은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하나의 전쟁이다. 이 판국에 한국이 중국 기술 스파이들의 놀이터로 전락하면 끝장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