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안과 창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사건의 가해자였던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고치려는 훈육’이었다고 답해 국민적 공분을 산 가운데, 민법에 있는 자녀 징계권 조항 삭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민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양이원영 의원은 각각 6월과 7월에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삭제를 골자로 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차례로 발의했다.
그 동안 민법 915조에 명시된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삭제를 촉구해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사단법인 두루는 개정안을 발의한 양이원영 의원, 신형영 의원과 함께 1일(수) 오전 10시 30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출발점으로 「민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하며, 국회의 결단을 촉구했다.
1958년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 없는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훈육 과정에서 징계라는 이름으로 자녀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조항으로 지적되어 왔다.
신현영 의원이 발의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915조 징계권 조항 삭제가, 양이원영 의원이 2일 발의 예정인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915조 징계권 조항의 삭제와 더불어 친권자의 보호교양의 의무를 규정한 제913조에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현영 의원은 "징계권을 악용해 폭력을 남용하는 현실은 막아야만 한다"라며 "국회는 민법상의 징계권을 폐지하라는 UN아동권리협약의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귀 기울여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양이원영 의원은 "민법 915조는 친권자에게 자녀 징계권을 인정해 민형사상 면책항변사유로 악용돼 왔으며,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처벌법 등과 상충돼 왔다"며 "징계권 삭제는 우리 사회가 나쁜 관습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가족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전복 복지사업본부장은 “아동학대 행위자 상당수가 아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한 훈육이었다고 답한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고 잘못하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학대로 이어지고 있는 이 현실을 우리모두는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출발점으로 민법 징계권 삭제는 반드시 필요하며, 아동학대로 고통을 받다가 세상을 떠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서 학대 받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민법 개정의 움직임은 있어왔다. 지난해 5월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징계권이란 용어가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대상으로만 오인할 수 있는 권위적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친권자의 징계권의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발표한 바 있다. 법무부 역시 지난 4월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위원장 윤진수, 이하 법제개선위원회)가 "민법 제915조 징계권을 삭제하고 민법에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권고한 이후 이를 수용한 민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들에게 민법 개정을 약속한 만큼 정부는 지체하지 말고, 바삐 움직여야 한다.
2019년 9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 심의 결과로 “법률 및 관행이 당사국 영토 내 모든 환경에서 ‘간접체벌’ 및 ‘훈육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와 국제적 요청에 우리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