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협' 끝내 걷어찬 민주노총

입력 2020-07-01 17:51
수정 2020-10-07 16:19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걷어찼다. 민주노총이 먼저 요청해 놓고 판이 마련되자 성에 안 찬다며 엎었다. 이 때문에 22년 만에 성사 직전까지 갔던 사회적 대타협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국무총리실은 1일 오전 10시15분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이 취소됐다”고 발표했다. 협약식 행사를 15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합의문에 반대하는 내부 강경파에 ‘사실상 감금’돼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정세균 총리와 경영계 및 노동계 대표들은 지난달 20일 이후 수십 차례 논의를 거쳐 완성한 합의문에 서명하고 공동 발표할 예정이었다.

합의문에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이 고용 유지와 기업 살리기, 사회안전망 확충 등에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노총 강경파들은 ‘해고 금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휴업·휴직 등에 협조한다는 내용이 대량 해고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지난 4월 제안해 이뤄졌다. 공식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불참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장외 대화기구 마련을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내부 강경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성사된 사회적 대화를 무산 위기로 몰고 갔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와 관련,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노사정 간에 좀 더 지혜를 모아보겠다”고 말했다. 최종석의 뉴스 view
위원장까지 감금한 민주노총 강경파…대타협 서명 15분 前 판깨 결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문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민주노총이었지만 무산 위기로 몰고간 것도 민주노총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노총에 휘둘려 흘려보낸 두 달이다.

민주노총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해보자고 한 것은 지난 4월 17일이었다. 1999년 노사정위원회(현재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나간 이후 21년 만이다. 코로나19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지난해 12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보다 조합원 수가 많아져 제1노총으로 떠오른 만큼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기구인 노사정대표자회의는 5월 20일 첫 회의를 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회의는 민주노총 중심으로 흘러갔다. 민주노총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에 대해 양보할 생각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도 심기는 불편했지만 경사노위 불참 단체인 민주노총을 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의, 민주노총에 의한, 민주노총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란 말이 나왔던 이유다.

노사정 합의 시한은 6월 말로 정해졌다. 하루 전인 29일 어렵사리 합의문안을 도출했다. 민주노총은 이를 중앙집행위원회에 부쳤지만 전국금속노동조합,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등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이 반발했다. 결국 최종 합의에 급제동이 걸렸다. 해고 금지와 특고 종사자에 대한 고용보험 전면 적용 등 노동계 핵심 요구사항이 빠지고 휴업·휴직 남발로 대량해고의 발판을 깔아줬다는 이유를 들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9, 30일에 이어 1일까지 사흘 연속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합의문안이) 일부 미흡하지만 경영계의 임금양보론을 차단하는 성과도 거뒀다”며 사회 협약의 최종 타결에 자신의 거취까지 걸었지만 결국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주노총 강경파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노동계가 양보한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두 차례 체결됐던 노사정 협약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용자는 고용 유지에 노력하고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면 노동계는 임금을 양보 또는 동결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금융위기 때 있었던 노동계의 임금 양보는 아예 빠졌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내 강경파는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협력한다’는 선언적 문구까지 문제삼았다.

합의가 무산되자 정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향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를 전제로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원 연장 등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일각에서는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정 총리의 리더십도 상처를 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 총리는 민주노총의 ‘장외 대화체 구성’ 제안을 받아들여 경영계는 물론 한국노총까지 설득해 한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다. 국정 전반을 챙기는 책임 총리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려 했던 정치적 행보였다.

한국노총도 민주노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 대화를 처음 제기한 정부와 민주노총은 고용 불안에 놓여 있는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와 민주노총은) 사과의 뜻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총으로서는 이례적인 입장 표명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 대타협에 서명하더라도 사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협약 이행을 책임질 주체가 없어지는 문제가 거론된다. ‘반쪽짜리 협약’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되는 배경이다.

백승현/최종석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