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버스데이 걸》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스무 살 생일이 되던 날, 주인공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매니저가 배탈이 나고, 언제나 그가 맡아서 하던 일을 주인공이 대신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건물 위에 살고 있으나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던 사장에게 저녁 식사를 가져다주는 일.
주인공은 매니저가 늘 해왔듯이 604호로 음식을 배달한다. 그런데, 음식을 두고 나오려는 순간 사장이 말을 건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가 그날이 바로 그녀의 스무 번째 생일임을 알게 된다.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사장은 그녀에게 소원을 빌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손바닥을 맞대며, “이걸로 됐네. 이걸로 자네의 소원은 이루어졌어”라고 말한다.
과연 그녀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간혹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가 1급 소설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다.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 그녀가 빈 소원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세 살 연상의 공인회계사와 결혼했고 아이가 둘이 있어. 아들과 딸. 아이리시 세터(개)가 한 마리. 아우디를 타고 다니고, 1주일에 두 번 여자 친구들과 테니스를 해. 그게 지금의 내 인생.”
그렇다면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일까? 과거, 스무 살 시절에 원했던 삶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 것일까? 이 역시 하루키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말해줄 뿐.
누구나 스무 살이던 시절이 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스무 살 생일을 맞는다. 스무 살이 아니어도 사실 무관하다. 소원을 빌며 미래를 점치고 싶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으니 말이다. 스무 살 즈음엔, 누구나 빛나는 미래의 계획과 갈망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스무 살 생일에 뭔가를 빌었을 테다. 하지만 그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안타깝게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엔 꽤나 간절했을 텐데, 지금은 흐릿하다. 어느새 소원이나 갈망 같은 단어와 멀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분명 20대엔 강렬히 원했고, 갖고 싶었고, 되고 싶었던 게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강렬했던 소망과 지금 현재의 삶은 얼마나 가까울까?
이쯤 되면, 하루키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 한 말이 무척 현명한 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남편, 자식, 친구들 그리고 적당한 취미와 안락한 자동차. 이쯤 가지고 있다면 스무 살 시절의 소원은 망각 속에 둬도 되는 것 아닐까? 스무 살의 꿈과 비교해 대차대조표를 꾸릴 게 아니라 지금 삶의 목록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 어쩌면 그게 더 현명한 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