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개콘의 추억

입력 2020-06-29 17:52
수정 2020-06-30 00:31
KBS 2TV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개콘)’의 마지막을 채운것은 ‘이태선 밴드’의 ‘파트타임 러버’(스티비 원더 원곡) 연주였다. 한창 인기를 끌던 201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이가 매주 일요일 밤 이 곡을 들으며 ‘내일 또 회사(학교) 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월요병(病)을 겪기도 했다.

1999년 대학로 공연가에서 인기를 모았던 스탠딩 코미디를 TV로 옮겨와 그해 9월 4일 첫선을 보였던 게 개콘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옥동자(정종철), 갈갈이(박준형), 달인(김병만) 등 다양한 캐릭터가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과 같은 유행어들을 펑펑 터뜨리며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그랬던 개콘이 그제 1050회를 마지막으로 2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방송사(史)에서 개콘처럼 20년 넘게 장기간 사랑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손에 꼽는다. 첫 방송 후 시청률 20% 선이 무너진 2013년까지 14년간 개콘은 30%대 시청률을 6번, 20%대는 312번이나 기록했다. 이 기간에 개콘은 한 코너의 인기가 시들해질 때쯤 새 ‘대박’ 코너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인기몰이를 했다.

그 배경에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이 있었다. 코너별로 개그맨 선·후배가 힘을 합쳐 아이디어 회의와 리허설을 통해 해당 코너를 완성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철저히 관객의 반응을 보고 방송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선배나 인기 개그맨도 재미없으면 ‘통편집’됐고, 무명 신인이라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 뜰 수 있는 건강한 진입·퇴출체계를 갖췄던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런 경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개콘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9년 5월 26일 마지막으로 시청률 10% 선이 무너진 개콘은 이후 다시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회복하지 못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재에 한계를 두지 않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날카로운 세태 풍자는 사라지고 어설픈 정치편향을 드러내거나, 외모 비하 등 식상한 소재를 자기복제하다 외면을 자초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예능의 주도권은 연예인 실생활 엿보기식 ‘관찰예능’으로 넘어갔다.

마침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사태를 계기로 ‘공정’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어서 개콘의 퇴장은 더 짙은 여운을 남긴다. 경쟁을 통한 정당한 계층이동의 꿈을 막는 사회가 개콘처럼 쇠락의 길을 걷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개콘보다 더 코미디 같은 현실 속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