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수사하는 검찰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를 중단하고 기소하지 말라”고 권고한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위원들이 10 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불기소 권고를 한 것에 대해 검찰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1년8개월 동안 수사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등 10개 혐의를 적용하고 8조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수사심의위 위원들은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를 법정에서 입증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당초 검찰은 오는 7월 인사를 앞두고 늦어도 다음달 초중순께 이 부회장을 기소할 계획이었다.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는 만큼 수사심의위 권고와 관계없이 기소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수사심의위가 압도적인 의견으로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이 같은 일정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기소를 강행하더라도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 보완 논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심의위 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한 혐의 주장으로 기소한다면 결과가 뻔할 수밖에 없다”며 “기소를 강행하려면 보완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대로 불기소하더라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1년8개월 동안 ‘무리한 수사’를 해왔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을 중심으로 ‘삼성 봐주기’라는 비난이 쏟아지면 윤석열 검찰총장(사진)의 입지도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와 수사심의위 의견을 종합해 최종 처분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선뜻 결론을 내기 어렵게 됐다.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줄곧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회계 조작과 시세 조종 등 불법 행위에 가담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검찰이 기소를 강행해 이 부회장이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검찰의 그동안 행보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는 수차례 판단이 번복된 사안이다. 금융감독원은 2016년 12월 참여연대가 보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질의서에 대해 “공인회계사협회 감리 결과,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2017년 2월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2018년 5월 기존 입장을 뒤집어 분식회계를 했다고 잠정 결론을 냈고, 같은 해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했다.
기존 법원의 판결에 비춰봐도 자본시장법 위반 입증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여러 차례 사건관계인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