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설집을 내기 위해 지난 3~4년간 쓴 작품들을 쓰고 묶으면서 스스로 어떻게 변화했고 무엇에 몰두했는지 정리해 볼 수 있었어요.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소설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정한 거죠.”
소설가 강화길(34·사진)은 최근 출간한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문학동네)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소설집에 실린 표제작 ‘화이트 호스’ 등 일곱 편의 단편은 신체에 가해지는 위협, 소문과 험담, 부당한 인식과 관습 등을 통해 교묘하게 여성을 억압해 온 거대한 사회구조를 서늘하게 비춰냈다. 지난 26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강 작가는 “2016년 첫 단편집 《괜찮은 사람》 속 작품을 통해 제 문학적 세계관을 하나씩 구축했다면 이후 3~4년은 그 세계관을 깊게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었다”며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제 변화와 성장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과도기적 작품”이라고 말했다.
2012년 등단한 강 작가는 지난해 발표한 단편소설 ‘음복(飮福)’으로 ‘2020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는 등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스릴러 기법을 활용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폭력 문제를 절묘하게 소설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손’ ‘서우’ ‘오물자의 출현’ 등에서도 오싹한 분위기를 통해 인물의 공포와 불안을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그는 “여성 작가로서 젠더 문제도 의식하고 있고 소설 속에도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만 (스릴러같이) 어떤 규칙을 지켜가면서 사람들 간 갈등 지점을 높이거나 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며 “인물 내면에 몰입함으로써 이야기에 더욱 깊게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소설집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화이트 호스’를 꼽았다. 이 작품은 ‘백마 탄 왕자’ 같이 여성을 구속하는 말(言)의 의미가 쓰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발표한 작품들이 문단에서 ‘여성주의’로 규정되고 그런 키워드만 뽑아서 읽히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는 쓰려고 생각한 주제를 어떻게 구현할까 몰입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걸 깨닫게 됐죠. 쓰는 내내 스스로 위로받았고 이후 하고 싶은 것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며느리의 시선에서 본 시가(媤家)의 비밀’(음복),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여준 애정 속에 숨은 진심의 차이’(가원), ‘시어머니와 함께 딸을 키우는 여성이 겪는 기묘한 일’(손) 등 이번 소설집 작품들은 유독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가족 이야기가 가장 특별하죠. 모든 가족은 각자 다 다르고 똑같지 않으니까요. 각 개인의 역사가 한곳에 모여 과거를 돌이켜보고 타인의 역사와 만나는 이야기를 하기에 가족은 아주 좋은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은 모두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결말 자체보다 읽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은 인물의 감정이 중요하죠.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알아채고 뭘 외면하는지 독자들과 함께 겪게 하는 거죠. 그 인물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가 끝납니다. 내용의 결말보다 감정의 결말을 강조하는 게 제 소설의 특징입니다.”
글=은정진/사진=신경훈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