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수입 유제품 곧 몰려오는데…절벽서 같이 떨어져 죽자는거냐"

입력 2020-06-26 17:43
수정 2020-06-27 00:44
“절벽을 향해 다 같이 전력질주하는 상황입니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도 원유값을 또 높여달라는 낙농가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정수용 한국유가공협회장(70·사진)은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5~6년 뒤면 값싸고 질 좋은 무관세 유제품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유를 생산하는 나라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며 “다섯 차례에 걸쳐 낙농가와 원유기본가격을 협상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유감”이라고 했다.

낙농가와 유업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낙농가는 1년 365일 매일 젖소의 우유를 짜야 하고, 기업은 유통기한이 짧은 원유를 가져다 가공한다. 하지만 수년째 시장의 수요와 공급 곡선은 무시됐다. 2013년부터 적용된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기업은 수요 공급과 상관없이 할당된 원유를 낙농가로부터 다 사줘야 하는 구조다.

정 협회장은 “원유가격연동제는 구제역 직후 낙농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만들어졌고 당시엔 수입 유제품도 많지 않았다”며 “국내 낙농가 상황이 정상화되고 수입품이 몰려드는 만큼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3~4배 더 비싼 국내산 원유를 쓰는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유업계는 한 업체가 10여 개에서 500여 개 이상의 농가와 연결돼 있다. 우유업체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연쇄적으로 연결된 농가가 한꺼번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얘기다.

유업계의 가장 큰 우려는 ‘수입 유제품'이다.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EU와 미국은 2026년이면 완전 무관세가 된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2033년 관세가 없어진다. 지난해 우유 수입량은 2010년에 비해 412% 늘어난 3884만L였다. 치즈와 발효유도 같은 기간 115%, 597% 늘었다.

정 협회장은 “우유 회사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이와 연결된 수십~수백 개의 농가도 함께 도산하는 것”이라며 “더 늦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유가공협회는 낙농업계에 원유 가격 동결 또는 인하를 호소하고 있다. 또 기업이 매입하는 원유의 70%는 생산비와 연동하는 현재 체계를 유지하되 가공유, 분유 등으로 쓰는 20~30%의 원유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매겨 국내 낙농업 경쟁력을 지키자는 뜻도 전달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