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등 사용후핵연료정책 수립을 위한 공론화 작업을 맡아온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25일 돌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가뜩이나 난항을 겪고 있는 공론화 작업이 안갯속으로 빠져들 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시급한 현안은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 문제다. 현재 시설은 2022년이면 가득 차기 때문에 늦어도 8월까지는 증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으면 원전 가동이 불가능하다. 지역주민 공론화가 파행을 겪으면서 월성 2~4호기가 모두 멈춰서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25일 정 위원장은 “26일 서울 한 식당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탈핵 시민사회계의 참여와 소통을 위해 나름대로 애써왔지만, 산업부에 대한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다”며 “시민사회계 참여를 끌어내지 못해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 어려워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월성 맥스터 증설, 영구처분시설 건립정책 등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과거 정부에서 수립했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국민 여론을 수렴해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관할지 등 밑그림부터 다시 짜기로 했다.
정 위원장은 공론화 작업이 파행을 빚고 있다며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국 단위 의견수렴을 위한 시민 참여단의 1차 종합토론회가 지난 6월 19~21일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지 못해 다음 달로 연기하게 됐고, 1차 토론회도 탈핵 시민사회계 참여가 이뤄지지 않아 균형 잡힌 토론회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에 이어 또다시 반쪽 공론화로 '재검토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는 포화가 임박한 월성원전 맥스터 확충에만 급급하다는 탈핵 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고, 보다 적극적이고 진솔한 소통을 통해 신뢰를 얻지 못한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재공론화가 성공하려면 탈핵 시민사회계를 포함하는 쪽으로 위원회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원전 산업정책 주관부처인 산업부가 아니라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 산하 기구에서 추진해야 중립성과 공정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흔들리면서 가뜩이나 난항을 겪고 있던 공론화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포화를 목전에 둔 월성원전 맥스터 공론화 일정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지난달 21일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월성 원전 맥스터가 2022년 3월이면 포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증설 작업에 19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역산하면 올 여름에는 증설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한국수력원자력 측의 추산이다.
원전소재지인 경주시 양남면 주민설명회는 찬반주민 간 격렬한 대립으로 세 차례나 무산됐다. 시민참여단 모집도 공정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