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일본 정부도 중국의 기술 스파이를 차단하는 강력한 조치를 마련한다. 중국의 조직 및 자금이 군사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일본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에 관여하거나 중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가장해 첨단 기술을 빼돌리려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24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연구자금을 지원받는 대학 연구실에 대해 외국 기업 및 조직과의 관계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2022년부터 정부기관에 연구자금을 신청하는 대학 연구실은 △주요 연구자의 해외 연구기관 겸직 △외국으로부터의 자금 지원 △이해상충 발생 여부 등을 공개해야 한다. 연구실 소속 외국 국적 연구자의 연구 이력과 기술 유출 방지 대책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새 규제는 중국의 해외 두뇌 영입 프로젝트인 ‘천인계획(千人計劃)’과 중국의 기술 스파이를 겨냥한 조치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중국은 천인계획을 통해 전 세계 인공지능(AI), 로봇 과학자들로부터 입수한 첨단기술과 지식을 군사기술에 활용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부터 실시한 민군융합 정책의 하나다. 지난 1월에는 미 국방부의 비밀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나노기술의 세계적인 권위자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가 천인계획 참여 사실을 은폐한 혐의로 체포돼 충격을 줬다.
천인계획에는 다수의 일본인 연구자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보공개 의무가 없어 일본 정부는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 연구자가 수출 규제 대상인 기술·제품을 반출하거나 첨단 기술 연구논문의 저자가 중국군 관련자로 밝혀지는 등 기술 도용 사례가 늘고 있다. 4000명 이상인 도쿄대·대학원의 유학생 가운데 60%가 중국인이다. 중국인 유학생이 빅데이터 분석이나 AI 개발 등 첨단 기술 연구를 참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본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는 반도체, 바이오기술, 차세대 통신규격 등 군사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많아 중국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달부터 민감한 기술의 중국 수출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의 민군융합 전략과 연계 가능성이 있는 중국인 대학원생 및 연구자에 대한 비자를 차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한 이후 대학 차원에서 중국 기업의 기부와 공동 연구를 거부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중국과의 관계 단절 가능성을 경고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블룸버그통신 등이 연 행사에서 “(중국과)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없다면 디커플링(결별)을 보게 될 것”이라고 중국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은 다양한 조건 아래서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을 정책 옵션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의 연장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보고 정치, 경제, 외교, 기술 등 각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이후엔 중국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중국 정부와 연계된 후원자들이 수십만달러를 쏟아부으며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최고위층에 접근해 로비를 벌이려 했다고 폭로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