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패스제' 놓고 대학가 극한 대립…코로나로 성적 불신도 커져

입력 2020-06-23 16:33
수정 2020-06-23 16:50

1학기 종강을 앞둔 대학가에서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하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시험에서 부정행위도 잇달아 적발되면서 성적평가에 대한 불신마저 커지고 있지만 대학들은 “사실상 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선택적 패스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 ‘도입 불가’ vs 학생들 ‘무기한 농성’

23일 경희대 총학생회는 경희대 본관 앞에서 선택적 패스제 도입과 등록금 환불을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선택적 패스제란 학생이 D이상 학점을 받으면 학점 성적 대신 급락(Pass or Fail)만 평가받는 것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당 과목은 이수처리만 되며 총괄 평점에 반영되지 않는다.

경희대 총학은 지난 4월 말부터 학교 측에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성적평가 기준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학교 측이 대면시험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정경원 경희대 부총학생회장은 “원격수업으로 수업 자체가 부실해졌고, 코로나19 여파로 학습 환경도 열악해진 만큼 선택적 패스제 도입은 당연한 요구”라며 “학교는 물론 재단에도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연세대와 이화여대 총학은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촉구하며 무기한 교내 농성에 돌입했다. 한양대 총학도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촉구하며 지난 22일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선택적 패스제는 일부 대학에서 비대면시험를 치르다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달 초 홍익대가 처음으로 선택적 패스제 도입한데 이어 서강대와 서울과학기술대도 합류했다.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중앙대 등을 비롯한 수도권 주요 대학들은 선택적 패스제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생에게 성적평가를 건너뛸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자기가 받은 성적이 맘에 들지 않으면 모두 패스처리를 해달라고 할 텐데 교수의 성적평가가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여파로 '성적 불신'까지

온라인 시험 부정도 끊이지 않으면서 학교와 학생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대학들은 평가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이날 중앙대는 법학 과목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단체 채팅방을 통해 일부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모의한 사실을 적발해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해당 학생들은 시험 문제가 공개되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통해 판례를 찾아주고 속기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외대에서도 온라인 교양과목 수업에서 7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정답을 공유하는 등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재시험을 치를 예정”이라며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은 징계위원회 회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대면 시험에 따른 부정행위는 인하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등에서 이미 적발된 바 있다. 이에 한양대, 고려대 등 일부 대학들은 기말고사를 대면시험으로 치르도록 했으나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집단감염이 우려 된다”며 비대면 시험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처럼 학생들과 학교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선택적 패스제 논란이 2학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이 가을까지 가면 선택적 패스제 논란이 2학기에도 또 이어질 것"이라며 "다수 학교들이 종강을 앞두고 있어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하기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