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우성인데…게임업계 '홀로 고용대박'

입력 2020-06-23 17:39
수정 2020-10-07 18:42

한국 게임산업이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내 주요 게임회사 직원은 40%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일자리 규모가 제자리걸음을 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사행성, 과몰입의 잣대로 게임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인기 게임의 지식재산권(IP)을 키우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 일궈낸 성과다.

한국경제신문이 23일 국내에 상장된 게임업체 36곳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올 1분기 기준 직원 수는 1만7258명으로 3년 전(1만2399명)보다 39.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시가총액 20조원을 처음 넘어선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주요 게임업체가 급성장하며 일자리를 창출한 결과다. 해외에 상장되거나 상장을 앞둔 게임사까지 합치면 게임업계의 신규 고용 창출 규모는 더 커진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크래프톤의 직원 수는 이 기간 768명에서 1598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해 일자리 예산으로 21조2000억원을 편성하는 등 매년 수십조원을 투입해 고용 창출에 나섰다. 하지만 올 1분기 기준 국내 전체 업종의 일자리는 3년 전(2017년 1분기)에 비해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양질의 일자리 공급원이던 제조업 일자리는 같은 기간 3.0% 줄었다.

국내 게임업계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 같은 갖가지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시선을 해외로 돌려 수출 국가를 다변화하고 인기 게임의 IP를 모바일 분야로 확대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철저한 성과보상제를 도입해 일하기 좋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조성, 인재를 끌어모은 것도 성과를 낸 배경으로 꼽힌다. 김혁수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게임산업이 커지면서 청년 일자리가 늘어 좋은 인력들이 모였고, 이는 게임사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인도·중동까지 휩쓰는 K게임…수출로 年 8兆 벌며 '고용 효자'로

‘검은사막’이라는 게임 지식재산권(IP) 하나로 지난해 5359억원의 매출을 올린 펄어비스는 경기 과천에 신사옥을 짓고 있다. 직원이 크게 늘어 사무실 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PC게임 ‘검은사막’ 성공으로 2016년 120명 정도였던 직원 수는 2018년 404명으로 세 배 넘게 늘었다. 2018년엔 ‘검은사막’의 모바일 버전이 ‘대박’을 터뜨렸다. 직원은 다시 두 배 이상 늘어 올 1분기 기준 832명으로 증가했다.


호실적이 일자리 견인

‘일자리 효자 산업’으로 성장한 게임산업의 고용 창출 비결은 간단하다. 펄어비스처럼 매출이 늘고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게임산업은 각종 규제 등 갖은 장애물에도 성장해왔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에 상장된 게임사 36곳의 올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매출은 2조5032억원으로 1년 전보다 22.4% 늘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4798억원으로 58.6% 급증했다. 다만 지난해 11월 출시돼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1위를 달성한 ‘리니지2M’을 개발한 엔씨소프트 실적을 제외하면 증가폭이 크게 감소한다.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4.7%와 6.9%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 수치도 국내 전체 상장사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로 올 1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전체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31.2% 감소했다. 코스닥 전체 상장사 영업이익도 22.9% 줄었다. 그만큼 한국 게임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게임산업은 2016년 10조8945억원에서 지난해 14조7000억원으로 3년 새 34.9% 커졌다.

한국 게임산업 성장의 가장 큰 요인은 수출 확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상반기 한국 게임 수출액을 33억3032만달러로 추정했다. 한국 콘텐츠산업 수출의 69%를 차지했다. K팝 등 음악산업 수출액(2억6070만달러)의 12배가 넘는다. 국내 1위 업체 넥슨과 2위 업체 넷마블의 해외 매출 비중은 50%를 웃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의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은 90%가 넘었다.

중국 의존 벗어나 ‘수출 신대륙’ 개척

국내 게임회사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진출이 막히자 수출국 다변화에 적극 나섰다. 중국은 국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2016년부터 한국산 게임 유통을 막고 있다. 넷마블은 북미와 유럽 시장을 공략했다. 지난 3월 출시한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는 애플 앱스토어 매출 기준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1위에 올랐다. ‘배틀그라운드’의 모바일 버전은 그동안 국내 게임들이 제대로 진출하지 못한 중동과 인도 지역에서 인기다.

인기 IP를 활용한 것도 한국 게임산업 성장 요인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지금도 국내 모바일 게임 순위 1위(리니지2M)와 2위(리니지M)를 차지하고 있다. 리니지 시리즈가 지난 22년 동안 올린 매출은 8조원을 넘는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IP로 쉽게 돈을 번다고 비판하지만 리니지 같은 강력한 IP를 창조해 유지하는 것도 평가받아야 한다”며 “닌텐도 역시 ‘슈퍼마리오’ ‘젤다’로 수십 년 동안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도전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도전도 성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경쟁력이 뒤처졌던 콘솔시장에 진출하는 게임사가 늘었다. 펄어비스는 지난해 게임 ‘검은사막’의 콘솔 버전을 내놨다. 올 3월에는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원’과 ‘플레이스테이션4’ 이용자끼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크로스 플레이’ 기능을 추가했다. 이 기능 덕분에 이용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게임 ‘미스트오버’를 플레이스테이션4와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내놓았다. 게임사들은 가상현실(VR) 등 새롭게 열리는 게임시장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자체 개발한 VR 게임 ‘포커스온유’와 ‘로건’을 지난해 내놨다.

철저한 성과 공유

게임업체들의 이런 도전과 혁신은 인재 유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임사들의 성과보상제도로 우수 인력이 몰리고 있다. 크래프톤은 2018년 배틀그라운드 개발 초기부터 참여한 직원 20여 명에게 1인당 최고 5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김혁수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중국의 신규 게임 수출이 막혀 있고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과몰입 질병화 등 게임산업에 대한 장애물은 여전하지만 한국 게임산업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김주완/구민기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