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연일 상승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선물 가격은 전일 대비 0.22% 오른 온스당 1766.40달러(약 213만원)로 마감했다. 2012년 2월 이후 8년여 만의 최고 기록이다. 최근의 금값 랠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진 지난 3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위험자산인 주식 가격이 크게 반등하는 현시점에도 금값은 여전히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금 투자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침체에도 선제적 인플레 대비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금과 물가연동채권, 부동산, 목재 등에 눈독을 들이는 글로벌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막대한 재정 지출과 중앙은행의 ‘돈 풀기(양적완화)’가 10년간 잠자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깨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6%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OECD)되는데 인플레를 걱정하는 건 기우(杞憂)라는 지적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각국 정부가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놓은 뒤에도 물가안정세는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미국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하자 ‘실업률과 물가는 반비례한다’는 경제학의 필립스곡선이 고장났다는 얘기도 나왔다.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현상을 ‘짖지 않는 개’에 비유했다.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명탐정 셜록 홈스는 집안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도 개가 짖지 않았다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막대한 유동성에도 글로벌 물가가 안정세를 보인 이유를 글로벌 분업화와 기술 혁신 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지금 인플레에 베팅하는 투자자는 “개가 짖을 때가 됐다”고 판단한다. 과거 물가 안정을 이끌었던 요인들이 앞으로 작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은 훼손됐다. 선진국 기업들이 ‘리쇼어링’ 정책에 따라 생산설비를 본국으로 옮기면 제품 원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기술 혁신을 위한 글로벌 협업도 어려워졌다. 씨티그룹이 산출하는 ‘인플레이션 서프라이즈지수’는 이미 이런 기대를 반영해 연중 최고점을 나타내고 있다.
금값 더 오른다
마이크 켈리 파인브릿지자산운용 대표는 이런 분석에 근거해 최근 금에 투자했다. 그는 “코로나19에 따른 불안심리 때문에 금값이 많이 올랐지만 앞으로 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면서 더 크게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6개월, 1년 뒤 금값 전망치를 온스당 1900달러, 2000달러로 이전보다 200달러씩 상향 조정했다. 금값이 역대 최고치였던 2011년 8월의 온스당 1888달러를 6개월이면 경신할 것이란 전망이다.
각국의 물가연동국채도 주목받고 있다. 물가연동채권은 원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이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물가연동채 30년물, 영국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은 영국 물가연동채 30년물을 추천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물가연동채권 연계 상장지수펀드(ETF)도 일제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 자산운용사 DWS의 클라우스 칼더모르겐 포트폴리오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통화량 공급에 비해 신축 부동산 공급은 더디다”며 “부동산 운용사 주식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금융회사 리걸&제프리는 건설경기 회복에 베팅하고 올초 목재 투자에 나서 계속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