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인간 헤르만 헤세’의 인생 이야기

입력 2020-06-22 18:19
수정 2020-06-22 18:51


우리에게 1919년작 소설 《데미안》으로 잘 알려진 독일계 스위스인 소설가 겸 시인인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수필집 《최초의 모험》(홍시)은 그가 생전 남긴 수필 중 25편을 엄선해 담은 책이다. 수필집은 유년기 느꼈던 불안을 회상한 글부터 자기 인생을 통틀어 만났던 의사들에 대한 단상까지 시간 순으로 구성됐다. 책에 실린 첫 수필과 마지막 수필 사이엔 60여년에 가까운 시간차가 존재한다. 20대 헤세부터 80대 헤세까지 그가 평생에 걸쳐 써내려간 사색의 기록은 청년에게도 노인에게도 혼자인 우리에게 매일은 모험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18세 찾아온 사랑의 순간부터 작품세계가 무르익은 시기 예술과 자연에 대해 가졌던 철학까지 헤세의 생각들이 그의 필체를 통해 스쳐간다. 표제작인 ‘최초의 모험’에선 수습공이었던 헤세의 청년기 서툴렀던 연애담을 회고했다. ‘어느 소나타’나 ‘빨간 물감이 없이’, ‘회화가 주는 기쁨과 고민’과 같은 수필에선 작품 세계가 무르익은 시기 그가 예술에 대해 가졌던 철학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골로의 귀향’에선 도시화되는 지역에 대한 소고와 함께 자연과 인간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또 ‘책상 앞에서의 시간들’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또 편지에 답신을 보내며 헤세가 복잡 다난한 인간사에 피로를 느낌과 동시에 관심을 가졌음을 알게 해준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헤세의 시선이 달라지는 모습도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인간이 늙어간다는 일에 대해 ‘어느 주정뱅이의 하루’에선 신체로부터의 고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묘사한 반면, 책 말미에 실린 ‘노년기’에선 늙어간다는 것도 젊은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신성한 과제이자 죽음은 귀중한 기능이라며 늙음을 예찬한다. 두 글 사이에 존재하는 30년에 가까운 시간차를 따라가다보면 헤세의 사색이 점점 원숙해지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헤세가 3000여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던 화가라는 점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1,2차 세계대전에 반대하자 배신자, 매국노라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이 때문에 정신질환을 겪었다. 헤세는 요양 차원에서 찾았던 시골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수채화로 표현하며 감성을 회복해 나갔다.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그림은 행위 그 자체로서 헤세를 치료해줬다. 책엔 산문과 함께 보면 좋을 그의 그림들이 실려있다. 헤세가 보고 느꼈던 자연경관을 담아낸 수채화를 산문과 함께 읽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졌던 그의 영혼과 마주하게 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