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안갯속'.. "1조원 소송 리스크 부담"

입력 2020-06-22 10:54
수정 2020-06-22 10:56
≪이 기사는 06월19일(06:4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산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공식화한 가운데 사모펀드(PEF) 업계 등 금융계에선 매각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하반기 결론나는 IMM 프라이빗에쿼티(PE)와 미래에셋PE 등 재무적투자자(FI)들과의 중국 법인 관련 소송에 패소하면 최대 1조원을 물어줘야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현재 시가총액은 1조5000억원 가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그룹은 자문사 크레디트스위스(CS)를 선임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시도하고 나섰다. 회사를 분할하거나, 매수자에게 소송 패소시 채무를 두산중공업 등이 대신 갚겠다고 보증해주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보증을 해준다고 해도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두산그룹이 현금 1조원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담보로 잡힌 두산인프라코어 자산이 대거 강제집행되면서 매수자가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업계에선 보고있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어럽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6.27%가 매물로 나온 것에 대해 "알짜 자산은 뺀 소송리스크만 남은 애매한 매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이미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아쉬울 게 없는 두산이 매각주관사와 함께 보여주기식 매각 시도를 한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두산인프라코어 핵심 자회사인 두산밥캣의 지분(51.05%)은 이번 매각에서 제외할 방침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소송이 결론나기 전엔 초대형 우발부채를 안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상부채 평가금액을 반영한 기업가치를 계산한 입찰은 이번 같은 사례엔 적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두산인프라코어를 지주사와 영업회사로 분할하면서 채무를 지주사가 떠안고 영업회사만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채권자들이 회사 분할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도자 측이 우발부채에 대해 특별손해로 보증하고 파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소송 당사자는 두산인프라코어라는 점과 두산그룹이 현금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두산그룹의 매각 의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건설 중장비와 선박·기계 엔진 제조업 등을 하는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중공업, 두산밥캣과의 시너지를 생각하면 두산그룹으로선 버리기 아까운 카드라고 업계에선 지적한다. 1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별도기준)이 241.5%에 달하지만 이자를 내면서도 꾸준히 순익을 내왔다.

밥캣을 제외하면 두산중공업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 지분(36.27%)은 시가 기준 가치 5587억원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도 1조원 미만에서 가격이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인프라코어를 팔면 두산중공업에는 이미 적자덩어리인 원전 등 발전사업과 같이 돈 안되는 사업만 남는다"며 "지금 예상되는 매각금액은 두산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심에서 180도 뒤집혀 패소한 두산

두산그룹을 궁지로 몰아넣은 이번 소송은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법인(DICC)의 지분 20%를 미래에셋PE와 IMM에게 매각하고 3800억원을 유치한 데서 비롯했다. FI들이 지분을 사주는 대신 두산은 2014년까지 기업공개(IPO)를 실행해 FI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FI들이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DICC 지분 80%까지 함께 제3자에게 팔아버릴 수 있게 하는 조항(drag along·동반매도청구권)도 계약서에 넣었다. 그렇지만 DICC의 IPO는 실행되지 않았고 회사도 매각되지 않았다.

결국 FI들은 2015년 법원에 소송을 냈다. FI측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제3자 매각절차 협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며 "투자 이후 연 15% 복리 수익률을 적용한 가격에 두산인프라코어가 DICC지분을 매입하고 매매대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초기 투자금 3800억원에 해당 수익률을 적용한 주식매매대금은 7093억원에 달한다. 다만 FI들은 소송비용을 고려해 100억원만 우선 청구해 재판을 받아보기로 했다.

1심 법원은 두산인프라코어와 대리인 김앤장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고, FI들이 패소했다. 2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서울고등법원은 2018년 2월 "인프라코어가 DICC 지분 매각 작업에 비협조적이었던 사실 등이 인정된다"며 "FI들에 대해 1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정반대의 판단을 했다.

FI측은 곧바로 약 7000억원 규모의 잔부청구소송(일부청구 소송의 결과를 바탕으로 남은 금액에 대해 제기하는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 제기된 100억원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르면 올해 하반기 중에 나올 예정이며, 이어 나머지 소송도 진행될 예정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면 DICC 주식매매대금 7093억원에 법정이자와 지연이자 등이 더해져 1조원이 넘는 돈을 지급해야한다.

한편 두산인프라코어 소송의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법률사무소 김앤장과 법무법인 세종의 대결도 눈길을 끌고 있다. 양 측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FI측 대리인은 법무법인 세종의 대리인단은 김용담 전 대법관이 이끌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김앤장변호사들과 법무법인 기현 변호사들로 대리인단을 꾸렸고, 이인복 전 대법관을 추가 선임했다. 이 전 대법관은 최근 법무법인 화우로 영입됐다.

김리안/이현일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