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툭하면 질러놓고 땜질…국민이 '탁상정책' 실험대상인가

입력 2020-06-21 18:31
수정 2020-06-22 00:11
환경부가 대형마트 등에서 일상화된 ‘묶음할인’ 판매를 금지하는 ‘재포장금지법’ 가이드라인을 최근 발표했다는 한경 보도(6월 20일자 A1, 3면)가 주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국민 편익은 안중에도 없는 정책”이란 비판이 들끓었다. 그러자 환경부는 설명자료를 내 △매대에 안내 문구를 표시한 경우 △개별제품을 띠지로 묶은 상품 △라면같이 공장에서 나올 때 아예 묶여 나오는 제품 등은 할인이 허용된다고 해명했다. 시행시기는 6개월 이상 유예하기로 했다. 지난 18일 식품·유통업계 간담회를 통해 “판촉을 위해 제품을 2개 이상 묶는 것을 금지한다”고 공언했던 데서 물러선 것이다.

비판이 잇따르자 정책 수정에 나선 것은 ‘6·17 부동산 대책’도 비슷하다.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틀어막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관계 부처가 슬그머니 ‘땜질’에 나섰다. 3억원 이상 아파트 구입 시 기존 전세자금대출을 즉시 회수키로 했던 것을 일정 기간 유예하기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규제 시행 후 전세대출을 받는 무주택자가 세입자가 있는 3억원 이상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전세대출 만기와 세입자가 나가는 날 중 더 빨리 돌아오는 날까지 대출을 회수하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강행,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도 그런 경우다. 현실은 외면한 채 이상적 정책목표 달성에만 매달리는 ‘책상머리 정책’이 이어지면서 국민이 겪는 고통과 혼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포장금지법과 6·17대책도 그런 연장선상이다.

폐기물이 급증하는 문제를 해소하고,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투기수요를 근절한다는 정책목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묶음할인에 쓰이는 포장재의 위해성 여부를 따져 규제하면 그만이지 업계의 할인판매 자체를 규제할 아무런 합당한 권한이 없다. 포장재 규제도 18만2000명에 달하는 관련 기업 종사자들의 형편 역시 감안했어야 한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음에도 지난 1월 제도시행 예고 뒤 별다른 조치도 없다가 시행시기가 다가오자 갑자기 ‘제멋대로’ 가이드라인을 불쑥 들이대는 것은 ‘갑질 행정’에 다름 아니다.

치밀한 설계와 검토 없이 ‘일단 던지고 보는’ 부동산 정책에는 이젠 이골이 날 지경이다. 이런 식이라면 21번 아니라 100번째 대책이 나와도 시장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에 매달려 맹목적 목표를 정해서 밀어붙이고 혼란이 생기면 임시 방편식으로 땜질 처방만을 남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 혼란은 가중되고 정부 신뢰는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돼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