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증자 발표에…적자기업도 상한가 '직행'

입력 2020-06-21 17:18
수정 2020-06-22 00:52
최근 일부 상장사가 무상증자를 발표한 뒤 주가부양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무상증자를 호재로 받아들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주가가 증자 사실을 발표한 직후 줄줄이 상한가로 직행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무상증자=재무상태 건전’이라는 공식이 꼭 성립하는 것은 아닌 데다 무상증자 발표를 이용해 해당 기업 관계자가 시세차익을 본 뒤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도 있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짜로 주식 나눠주는 기업들

지난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11개 기업이 무상증자(유상증자를 함께 발표한 기업 제외)를 공시했다. 이 중 7개 기업의 주가는 발표 당일 20% 이상 올랐다. 레고켐바이오, 오스테오닉, 힘스, 와이엠티 등 4개 기업은 상한가로 직행했다.

무상증자는 공짜로 주식을 나눠주는 걸 말한다. 기업의 자기자본은 자본금과 잉여금으로 나뉘는데 잉여금에 있던 돈으로 주식을 발행해 자본금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발행한 주식을 기존 주주에게 나눠준다.

무상증자의 가장 큰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와 주가 관리’다. 무상증자가 가능하다는 것은 회사 내부에 잉여금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재무구조가 건전하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인다.

적자 기업도 상한가 직행

문제는 재무상태가 건전하지 않음에도 무상증자를 발표하는 경우다.

연구 중심의 항체 치료제 개발 기업인 파멥신은 지난해 10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뒤 2년 연속 매출이 0원이다. 이 회사는 지난 15일 1 대 1 무상증자를 공시했다. 다음달 1일 기준으로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에게 주당 1주를 배정하는 방식이다. 벌어들인 이익으로 무상증자를 하는 게 아니라 기존 주식을 발행하면서 생겼던 주식발행초과금(잉여금에 포함)을 자본금 계정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무상증자를 한다.

이때 덕을 보는 건 지난해 파멥신의 전환사채(CB)를 매입했던 기관이다. CB는 일정한 기간 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투자자들은 파멥신 주가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CB를 매입했는데, 파멥신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무상증자 발표 후 파멥신 주가는 당일에만 25.75% 올랐다. 발표 직전 4만3100원대였던 주가는 5만6400원까지 올라 CB 전환가격(4만7173원)을 훌쩍 넘어섰다. CB 투자자들로선 손실을 보던 자산이 며칠 만에 20%에 가까운 수익을 내게 된 것이다.

파멥신이 지난해 발행한 CB는 1000억원 규모다. 1000억원 규모의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전체 발행 주식의 20%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개인 투자자들은 손실을 볼 수 있다.

기업 임원이 주식 내다 팔면서 주가 급락

무상증자 발표 직후 주가가 급등하자 해당 기업 임원이 잇따라 주식을 내다 파는 경우도 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장비 업체 힘스는 지난 10일 무상증자 발표 후 상한가를 기록했다. 주가가 급등하자 임원 7명은 공시 다음 날 힘스 주식 6만722주를 처분했다. 내부 임원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면 시장에서는 ‘고점’으로 인식해 주가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기업 와이엠티도 11일 무상증자 발표 후 상한가를 기록했다. 전성욱 대표의 동생인 전상욱 전무는 무상증자 발표 다음날 6만3500주를 처분했다. 이 회사 주가는 12일에는 7%, 15일에는 15% 하락했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최근 코로나로 인해 혜택을 받는 기업이 아니거나 본질적으로 기업 가치를 의심받는 기업인데 무상증자를 하는 것이라면 시류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크다”며 “이런 경우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