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가치주…4년 만에 '몸값 재평가' 시동?

입력 2020-06-21 16:55
수정 2020-06-22 00:54
인터넷과 헬스케어 업종 등 성장주가 주도하던 국내 증시에서 자산가치와 수익성 대비 저평가된 가치주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코스피지수가 연초 고점인 2200선에 근접하면서 펼쳐진 순환매 장세의 온기가 그동안 소외됐던 가치주까지 퍼져나간 모습이다.


지난 19일 한국제지는 8.84% 상승한 1만9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들어 주가 상승률은 14.86%에 달한다. 이 기간 기관투자가는 한국제지 주식 3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한국제지는 시가총액이 986억원(19일 종가 기준)에 불과하지만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이 4932억원에 달하는 대표적인 저평가 가치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배 수요가 급증하면서 골판지 제조사인 한국제지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가 상승 재료로 작용했다. 증권가의 대표적 ‘가치투자 하우스’인 신영자산운용이 한국제지 지분 12.3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6월 증시에서는 한국제지 외에도 여러 가치주가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대한제분(6월 주가 상승률 28.95%), 일신방직(19.01%), 농심(17.12%), 대한화섬(8.86%)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올초 영화 ‘기생충’ 수혜 효과로 급등한 농심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4 이하고,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신영자산운용 등 가치투자가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저평가 가치주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2.56% 하락하는 데 그쳤다.

경기 반등 예상에…펀드도 수익률 회복

전문가들은 가치주가 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을 등에 업고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성장주는 기업 실적 개선 기대가 약한 경기침체기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가치주는 반대로 시장 전체의 전망이 긍정적일수록 좋은 흐름을 보여왔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올 상반기 장세의 주인공이 성장주였다면, 성장주들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부담이 커지면서 하반기 경기 반등 기대와 함께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밸류에이션의 가치주에까지 매수세가 몰렸다는 설명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세 곳 이상이 실적 전망을 낸 국내 201개 상장사의 하반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총 66조758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33% 증가할 전망이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유동성이 이끈 순환매 장세 속에서 저평가 가치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가치주에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공모펀드의 수익률도 조금씩 개선되는 흐름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97개 가치주펀드는 지난 3개월 동안 26.46%의 수익률을 올렸다. 올해 평균 수익률은 아직 -7.19%로 손실 상태지만, 일부 대형 펀드는 수익을 냈다.

가치투자 진영의 대표적 스타인 강방천이 이끄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 펀드는 올 들어 7%의 수익을 거둬 설정액 400억원 이상의 가치주 펀드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신영자산운용에서는 ‘신영밸류우선주’ 펀드가 우선주 급등에 힘입어 최근 1개월 동안 16.24%의 수익을 올렸다.

4년 주기설? 성장주 불패신화?

가치주들이 성장주와의 키 맞추기를 넘어 2012~2016년 당시처럼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까지 올라서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기 반등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역대 최저 수준(한국은행 기준금리 0.5%)에 다다른 금리가 다시 인상되는 흐름을 보여야 성장주들의 성장 프리미엄보다는 가치주들의 보유자산 매력이 주목받을 수 있다.

이하윤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3월 급락장 이후 시장은 코로나19 공포에 하락한 가치주보다 사회 변화 속에 성장성이 돋보이는 성장주를 선호하는 모습”이라며 “다만 시중에 역대 최대 수준의 유동성이 풀렸고, 내년 경기 전망도 개선되는 흐름이라 전통 업종의 가치주 가운데서도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