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시인 정지용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입력 2020-06-19 17:22
수정 2020-06-20 00:29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일제 강점기 서정시인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향토적 정서를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해낸 그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앞날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대 시인들 사이에서 그는 소위 ‘인기 스타’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언급조차 금기시된 아픔을 갖고 있다.

시인 정지용은 1902년 6월 20일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 교토 도시샤대에서 영문학을 배웠다. 이전에도 조금씩 시를 써온 그는 1926년 일본 유학생 잡지인 ‘학조’에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7년 발표한 ‘향수’ 외에도 1930년대의 ‘백록담’ ‘장수산’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그는 1930년대 한국 시단을 이끌었다. 해방 이후 서울에서 머물던 정지용은 6·25전쟁 시기 행방이 묘연해졌다. 월북시인으로 몰린 탓에 그의 시는 1988년 해금(解禁) 때까지 공개적 언급이 금지됐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