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채용으로! 기업들 자구인가, 반란인가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6-19 10:07
수정 2020-06-19 10:29

#1 봄 학기 대면강좌가 무산된 대학가에서 ‘등록금 반환’논란이 거세다. ‘코로나 쇼크’로 제대로 된 강의도 못 받고 학사일정은 파행을 빚었으니 일부라도 등록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게 학생들 주장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학생들 처지도 안타깝지만, 대학 운영의 속사정을 보면 대학당국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등록금 논란’ 이면의 근본 문제는 무엇일까. 일자리도 제대로 없고, 미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청년들의 좌절감과 기득권 기성세대를 향한 원망이 깔려있다고 보면 무리한 해석일까.

#2 미국의 보편적인 취업계약서 앞부분 들어있는 조항 중에 한국과 크게 다른 게 있다. ‘고용자(갑?)와 피고용인(을?)은 어느 쪽이라도 이 계약(고용관계의 약속)을 사전에 통보(합의)하지 않고 서로가 끝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게 ‘고용유연성’이다. 쉬고 싶을 때 쉰다거나, 수시로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물론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해고의 위험성도 있다. 그럼에도 고용시장에 역동성을 준다. 무엇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채용과 채용유지에 대한 부담이 적게 된다. 한국은 한번 채용하면 근로자가 결정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정년까지 안고 가야 하는 체제다. 고용·노동 법체제가 그렇다. 그 결과 '주식회사 한국경제신문'은 허원순 논설위원과 고용계약관계를 쉽게 끝낼 수가 없다. 막말로 자를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논설실의 허원순은 내일이라도 고용계약관계를 마음대로 끝낼 수 있다. 누가 ‘갑’인가. 적어도 고용관계의 지속이나 종료 문제에서는 주식회사 한국경제신문의 근로자인 허원순이 완전 갑이다. 규정대로 하면 퇴직(고용관계 종료) 2달 전에 상대측에 알려줘야 하지만, 사표 던지면서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을 받았다거나 큰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경직된 고용관계에는 이런 양면성이 있다.

◆채용시장의 새 변수, 수시채용 나서는 기업들 계속 늘어날 것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몇 백 명, 심지어 몇 천 명씩 일시에 뽑아 계열사로 배치하는 일괄채용 방식에 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공채 00기라는 식의 인재채용 시대가 끝나가는 것 같다. 최근 LG그룹이 65년 된 정기공채를 없앤 게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지난해부터 직무 중심의 수시채용에 돌입했다. SK KT 쪽에서도 수시채용을 늘려가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인력이 필요한 부서가 자기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는 수시채용은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일본 정도가 예외일 뿐,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제도다.

앞의 두 가지 에피소드처럼 채용과 고용유지 문제에서는 고려할 게 매우 많다, 그렇다면 수시채용은 구직자들, 특히 사회 진출을 처음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LG만 해도 필요 인력의 70%를 인턴으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채용형 인턴십이다. 10~20분의 인터뷰보다 4주간의 인턴십이 인재의 평가와 선벌에 훨씬 유용할 것이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스펙’을 쌓아야 할 필요성은 확 줄어들었지만, 취업희망자들로서는 막막 하달까, 당혹스럽기도 할 것이다. 안 그래도 ‘문송’이라는 인문계 출신은 인턴 기회라도 제대로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취업난의 근본 해소책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투자가 이뤄지고 소비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일자리는 그렇게 경제가 활성화되고 정상의 성장궤도에 오를 때 결과로 생기는 게 정석이지만, 일련의 정책을 보면 이 당연한 길이 어렵기만 해 보인다. 물론 국내 굴지의 최대 기업을 포함해 신입 직원의 30% 가량이 입사 1년 이내에 퇴사하는 ‘구직자-일자리 미스매치’도 나아지면서 인력시장의 불합리 요인이 개선될 것이니 장점을 보면서 갈 수밖에 없다.

◆채용 형태, 일하는 방식 변화… 낡은 제도 극복 시도

기업 입장에서는 왜 수시채용으로 대전환하는가. 무엇보다 법으로 억누르는 고용경직성, 노동경직성에 대한 자구책이 시작된 것이다. 생존을 확실할 수 없는 무한경쟁 시대, 기업의 ‘생존 반란’이라고 말해도 무방해 보인다. 고용유연성이 완전 바닥으로 한번 채용하면 심지어 30년 이상 정년을 보장해야 하는데, 슈퍼 여당 쪽에서 돌아가는 모양세가 60세인 정년을 65세로 더 늘릴 분위기다. 일자리와 경제적 성취를 둘러싼 ‘세대간 대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아마도 2022년 대선 때는 정년 추가연장이 공약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경제에 부담문제는 그렇다 치고, 기성세대의 대야합이 될 것이다. 이런 판이니 우선 ‘채용의 유연성’으로라도 작은 돌파구를 삼자는 것으로 평가된다.

채용유연성이 법으로 제도화된 고용경직성을 다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채용자)은 어떻게 할까. 다음의 자구 방편은 ‘임금의 유연성’추구가 될 수 있다. 수시채용이 되면 일괄채용으로 호봉에 따라 비슷비슷하거나 연차에 따라 아예 같은 임금구조는 자연스럽게 깨질 수밖에 없다. 직무에 따라, 능력에 따라, 성과에 따른 임금을 주고받는 것이다. 연봉제, 성과급제, 직무급제 라는 급여체제가 그것이다. 역시 일본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그렇게 한다.

◆예고된 임금유연성 추구, 공공부문도 변해야

임금유연성이 자리 잡으면 한국 특유의 과도한 노사분쟁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일괄로 ‘올해 00%를 올려라’는 식의 임금투쟁 자체가 호봉제를 벗어나게 되면 공감대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채용유연성 임금유연성이 그렇게라도 조금씩 개선된다면 그 다름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간다고 봐야 한다. 근무유연성, 즉 근무시간의 유연성, 근무방식의 유연성이다. 억지로 강행되는 주52시간제처럼 이 역시 법적 제약이 적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코로나쇼크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됐고, 근무시간의 조정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법으로 가로 막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사용자가 유리한가, 근로자가 유리한가, 따질 겨를도 없이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데 낡고 경직된 법만 틀에 박힌 제도를 강요하고 있다. 이런 것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공공 부문이 앞서거나 최소한 변화에 발맞춰야 하는데, 오히려 뒤쳐져 있다. 공무원도 공기업 채용도 수 십 년째 획일적 필답고사, 선다형 찍기로 뽑아 호봉제 임금 그대로다. 여기에도 일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지.

고용·노동개혁 없이 ‘코로나 이후’도, 본격적인 4차 산업 혁명 시대 맞기도 어렵다는 주장이 그래서 계속 반복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