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이동통신사들에 광고비를 떠넘기는 등 ‘갑질’을 한 애플코리아에 자진 시정방안을 마련할 기회를 줬다. 자진 시정안이 받아들여지면 애플은 거액의 과징금을 물거나 검찰에 고발당하는 대신 이동통신사들에 피해 보상만 하게 된다. 일각에선 공정위가 애플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애플, 공정위 제재 대신 자진 시정
공정위는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발표했다. 동의의결은 법을 어긴 기업이 피해 보상 등 내용을 담은 자진 시정안을 내놓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애플은 2009년 아이폰3GS를 한국에 출시한 뒤 한국 통신사에 TV·옥외 등 광고비와 매장 내 진열비, 수리비 등을 떠넘기고, 보조금 지급과 광고 등에도 간섭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2016년 6월 애플에 대한 첫 현장조사에 착수해 2018년 4월 법 위반 혐의가 담긴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애플에 보냈고, 2018년 12월과 지난해 1, 3월 등 세 차례 전원회의를 열어 사건을 심의했다.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던 애플은 3차 심의 이후인 작년 6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혐의를 사실상 인정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해 9월 애플의 시정방안이 미흡하다고 보고 절차 개시를 미뤘다. 애플이 자진 시정방안을 보완해 오자 올해 5월 다시 심의에 들어갔고, 추가 보완을 거쳐 전날 전원회의에서 절차 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애플이 동의의결을 신청한 지 1년 만이다.
“애플에 면죄부” 비판도
이번에 심의절차가 개시된 자진 시정방안에는 애플이 일정 금액의 상생지원기금을 마련해 부품 개발업체 등 중소사업자 및 프로그램 개발자, 소비자와의 상생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통신사들이 부담하는 단말기 광고와 무상수리 서비스 관련 비용을 줄이고 비용 분담을 위한 협의 절차를 도입하는 방안, 이통사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거래조건을 고치는 방안도 포함됐다.
애플은 공정위와 협의해 한 달 안에 구체적인 자진 시정방안 잠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위가 이해관계자와 관계부처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잠정안을 심의해 의결하면 동의의결이 확정된다.
이 경우 애플은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기 때문에 같은 혐의로 애플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애플코리아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애플은 그동안 어떤 법률 위반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며 “이제는 우리의 고객과 지역사회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자체를 부인한 셈이다.
‘갑질’의 대상이었던 통신사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공정위가 애플 측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칼자루도 넘겨준 게 아니냐는 얘기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이후에도 현장에서 애플의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시정안에 광고비 부담과 수리 대응 같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됐을 뿐 통신사와 애플 당사자 간 협의와 조율이 필요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성수영/이승우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