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CATL·파나소닉…불꽃 튀는 '배터리 삼국지'

입력 2020-06-18 17:35
수정 2020-06-19 01:17
“물량전과 속도전을 동시에 치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한 번 밀리면 끝장입니다.”

올 들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처음으로 1위에 오른 LG화학 관계자는 날로 격화되는 시장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잡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기술 확보와 투자 경쟁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

배터리 전쟁은 ‘더 멀리, 더 오래, 더 안정적인’ 제품을 앞서 개발하고, 양산에 성공해 시장에 공급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최근엔 배터리 제조사들의 경쟁에 테슬라 BMW 등 자동차 제조사들까지 ‘참전’을 선언하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세계 배터리 시장은 韓中日 삼국지

전기차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국가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개 국가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가 집계한 올 들어 4월까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이들 3개국 기업이다. LG화학은 올 들어 처음으로 일본 파나소닉을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중국 CATL과 비야디(BYD)가 3, 4위를 기록한 가운데 삼성SDI도 5위로 선두권을 추격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술 개발에만 매년 조(兆) 단위의 비용을 쓰고 있다. LG화학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은 1조1300억원으로, 연구진만 5700명에 달한다. LG화학 관계자는 “R&D 비용의 35%, 인원의 40%가량이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있다”며 “올해엔 이보다 예산과 인력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파나소닉의 지난해 R&D 비용은 44억3000만달러(약 5조3100억원)로, 이 중 20%가량이 배터리 관련 연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주자인 CATL도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최근 5년간 80억위안(약 1조3660억원)을 배터리 기술 개발에 쏟아부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와 기업은 한몸과 다름없다”며 “가장 위협적인 상대”라고 말했다. 삼성SDI도 지난해 매출의 7%가 넘는 7124억원을 배터리 연구에 썼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시설 투자엔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선 기술 개발 못지않게 공급 능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물량전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공장 설립에만 8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SK이노베이션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본격 시작한 이후 7조원을 공장 설립에 투자했다. CATL은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올해 22억달러(약 2조66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참전’

예상외로 전기차 시대가 빨리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자동차 업체들도 배터리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파나소닉에 배터리를 의존하던 테슬라는 지난해 배터리 회사 맥스웰을 2억3500만달러에 사들였다. 최근엔 CATL과 공동으로 100만마일(약 160만㎞) 거리 수명의 배터리를 장착한 차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BMW 도요타 등도 자체적으로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시장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배터리 회사들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목표로 삼고 있는 건 ‘빠르고 오래가며 폭발하지 않는 배터리’다. 통상 배터리 이름 뒤에 ‘811’ 등의 숫자명이 붙는데, 이는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8)과 코발트(1) 망간(1) 등의 비율을 지칭한다. 니켈의 함량을 높이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높아져 힘이 세지고 수명이 길어진다. 다만 니켈 비중이 높을수록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안전성이 훼손된다.

배터리 회사들은 안전하면서도 니켈 비중을 높이는 연구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체들은 니켈 비중이 90%에 가까운 배터리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의 기술 수준은 동등하고 중국 회사는 2~4년 기술이 뒤지는 상태”라고 했다. 테슬라 역시 코발트 비중을 0까지 떨어뜨려 니켈 비중을 높이는 배터리 개발에 들어갔다.

배터리 회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고체 배터리’다.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의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배터리로 폭발 위험이 사라지고 배터리 크기도 줄일 수 있어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최근 공개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1회 충전으로 800㎞를 주행하고 1000회 이상 재충전할 수 있다. 일본 후지경제연구소는 세계 전고체 전지 시장이 2035년 2조7877억엔(약 28조6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