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의 전세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강남권에서 1만 가구 규모의 재개발·재건축 도시정비사업지가 줄줄이 이주를 계획하고 있어서다. 같은 기간 입주 물량은 적고, 최근 2~3년 새 준공된 아파트는 양도세 면제를 위한 집주인의 입주가 늘면서 전세 매물이 줄어들고 있다. 신규 공급은 제한된 반면 멸실 주택이 늘어나면서 하반기 강남발(發) 전세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1만 가구 이주
18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만 9650가구의 이주가 시작된다. 첫 포문은 지난 3월 이주를 시작한 강남구 청담동 청담삼익아파트(888가구)가 열었다. 여기에 지난달 25일부터 3000가구 규모의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가 이사에 나서면서 전세난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단지는 오는 10월까지 순차적으로 이주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초구 방배동 재개발지역인 방배13구역(1550가구)과 방배14구역(316가구)도 하반기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내년에는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지구(2100가구)와 3주구(1490가구) 등이 이주에 나선다.
전세 수요는 많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입주 예정 물량은 적은 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강남·서초구 입주 예정 물량은 각각 2395가구, 2505가구에 그친다. 내년 상반기도 2638가구가 준공될 예정이다.
강남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2개월 새 1억~2억원가량 올랐다. 잠원동 신반포2차 전용면적 68㎡는 지난달 6억원에 전세 거래됐다. 불과 한 달 전인 4월 같은 층이 3억9900만원에 손바뀐 것과 비교하면 2억원이 뛰었다. 지난 1월 8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청담동 청담자이 전용 49㎡는 지난달 9억3000만원에 실거래됐다. 호가는 9억7000만원 선이다. 청담동 D공인 관계자는 “청담삼익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청담자이’와 ‘청담 e편한세상’ 등 인근 아파트 단지의 전세 매물을 구하기 어려워 대기 수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 이주 수요가 늘면서 송파구 잠실동, 동작구 사당·이수 등의 전세매물도 품귀 현상이다. 잠원동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지난 4월 입주한 신반포센트럴자이 집주인이 대부분 실제 거주하면서 전세 매물이 거의 없다”며 “이주 수요가 반포, 잠원을 넘어 사당, 이수, 논현, 방배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초구 방배동 일대 연립주택 전세가격이 올 들어 5000만원 오르는 등 빌라와 오피스텔을 찾는 수요도 증가세다.
학군·청약 수요 겹쳐 수급 불안 지속
업계에서는 서울 강남 전세난이 하반기에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세 이주 수요뿐 아니라 강남학군 수요, 청약 대기 수요 등이 더해지고 있어서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전세 공급이 늘어나려면 신규 아파트 입주가 많거나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가 증가해야 하는데 ‘6·17 부동산 대책’으로 갭투자도 막혔다”며 “내년 중·고교 배정을 위한 하반기 강남학군 이주 수요와 청약 대기 수요 등으로 강남 전세 수요는 늘어 전세난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 재개약 단지의 가격이 뛴 것도 부담이다. 2018년 입주한 서초구 ‘아크로 리버뷰신반포’(595가구),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 2019년 초 준공된 강남구 ‘개포래미안 블레스티지’(1957가구) 등은 2년 사이 전셋값이 4억원가량 뛰었다. 지난해 초 4억원대였던 ‘개포래미안 블레스티지’ 전용 49㎡의 전세 가격이 8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전월세신고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전세 수급 불균형을 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임대차 3법이 적용되면 세입자가 4년을 살 수 있지만 전셋값이 2년마다 오르는 것”이라며 “집주인이 전세 대신 월세, 반전세로 전환해 전세 구하기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