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아나운서 채용차별 논란 대전MBC…"정규직은 모두 남성"

입력 2020-06-18 16:45
수정 2020-06-18 16:47

방송국 공채를 통해 경력직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남자만 정규직 아나운서로 채용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판단했다. 인권위는 시정을 권고했고 시민단체들은 대전MBC에 즉각 권고안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여성·언론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18일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과 대전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대전MBC는 인권위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현직에 있는 유모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1년여 동안 유 아나운서가 부당업무 배제와 사내 고립으로 고통받은 데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대전MBC와 MBC 본사는 성차별 채용 관행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성적으로 평등한 채용과 노동환경 조성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본사 차원에서 지역 계열사 채용 현황과 원인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시정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대책위는 "MBC 지역방송사 거의 전반(총 12개 지역방송사)에서 여성 아나운서만 계약직 혹은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실태가 드러났다"며 "지상파의 경영적자를 여성 아나운서의 고용형태와 노동조건 차별의 합당한 핑계로 삼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또 "이번 문제는 특정 성별의 노동자를 불리한 조건의 직무나 직급, 고용형태로 배치하는 '성별분리채용'의 문제를 현직에 있는 당사자가 직접 '채용 성차별'로 이름 지어 공론화한 한국 최초의 사례"라며 "인권위 결정이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렸다"고 의미 부여했다.

앞서 인권위는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 2명이 지난해 6월 채용 성차별 진정을 접수한 데 대해 문제점을 인정하고 채용 성차별 관행 해소안 마련과 해당 아나운서들의 정규직 전환, 인권위 진정 후 가한 불이익에 위로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냈다

진정인은 "사측은 여성 아나운서는 나이가 들면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을 갖고 아나운서를 채용하면서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구분 채용해 수년 간 성차별을 지속해왔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해당 방송국에서 1990년대 이후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었으며, 1997년부터 2019년 6월 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된 시점까지 채용한 15명의 계약직과 5명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다.

대전 MBC 측은 "공교롭게도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일 뿐 성차별 의도가 없었다"며 "실제 모집요강 등의 절차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거나 특정 성별로 제한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인권위 조사에서 대전 MBC 측은 아나운서의 보직이 필요할 때 해당 자리가 여성의 경우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로, 남성인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형태를 달리해 모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며 비정규직은 예외없이 여정인 점은 오랜 시간 지속된 성차별적 채용 관행이라고 인권위는 판단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대전 MBC 사장에게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업무를 수행한 진정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MBC방송 대주주에게는 본사와 지역 계열사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게 성차별 시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