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동학개미'가 있다면 일본에는 '닌자개미'가 있다. 일본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식시장이 폭락한 것을 기회로 삼아 주식투자에 나서는 젊은 개인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증권사의 신규 증권계좌개설수 기록을 갈아치우고 외국인의 매도세를 떠받치는 것까지 동학개미를 닮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계열 전문지인 닛케이머니가 4월15일부터 5월6일까지 3만49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8일 공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했다는 응답자는 3777명으로 전체의 10.8%에 달했다. 작년 조사보다 두 배 늘었다.
30대가 35.2%로 가장 많았고, 40대(26.8%)와 20대(20.1%) 등 자산형성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새로 주식투자를 시작한 계기는 '노후자금 마련', '투자수익 확보' '코로나19로 인한 주식 급락', '자산 형성을 통한 조기퇴직 실현' 등의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은 점을 반영하듯 전체의 70%는 종잣돈이 100만엔 미만(약 1133만원)이었다.
닌자개미의 출현은 인터넷증권사들의 신규 계좌개설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 전문 증권사인 SBI증권과 라쿠텐증권의 3월 한 달간 신규 계좌개설수는 각각 12만건과 16만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국인들이 일본 주식을 팔아치우는 상황에서 일본 주식을 사들여 시장을 떠받치는 모습도 동학개미와 판박이다. 닌자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복수응답)은 일본주식(58.4%)이었다. 선진국 상장지수펀드(ETF), 일본 ETF 등도 일본 개인투자자들의 주요 투자처였다. 도쿄증시 거래대금의 70%를 차지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이 5월 둘째주까지 14주 연속 일본주식을 순매도한 것과 대비를 이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단수주 투자와 쇼핑 포인트 결제 등 소액으로 주식투자가 가능한 구조가 보급되면서 젊은층 초심자들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외출제한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점도 젊은 층의 주식투자가 늘어난 배경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긴급경제대책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씩을 지급하는 제도 또한 젊은 층의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가계부앱 머니포워드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부로부터 받은 10만엔을 주식투자에 사용하겠다는 응답은 13%로 생활비, 저축, 여행 및 오락 등에 이어 다섯번째로 많았다. 전 국민 10만엔 지급제도로 시중에 풀리는 자금은 총 12조7300억엔이다. 단순 계산으로 약 1조엔이 주식시장에 유입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응답자의 60%가 30~40대 젊은 층이며 이 가운데 10%는 코로나19 이후 주가급락을 계기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고 답했다.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으로서는 드물게 ETF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식시장까지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 3월 중순 1만6000선까지 급락한 닛케이225지수가 5월 하순부터 급반등했다. 지난 8일에는 2만3000엔선을 넘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