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핵군축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의 핵군축 여부가 미·중 갈등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케이 베일리 허치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주재 미국 대사는 17일(현지시간)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다음주에 열리는 핵군축 협상의 당사자는 미국와 러시아와 중국 등 3개국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는 오는 22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갱신 관련 핵군축 협상을 열 계획이다.
뉴스타트는 1991년 미국과 옛소련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감축 등에 합의한 전략무기감축협정(스타트)의 후속 협정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0년 체결됐다. 뉴스타트는 양국에 배치하는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군축 담당특사인 마셜 빌링슬리는 지난 9일 중국을 이번 핵군축 협상에 처음으로 공식 초대했다. 그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큰 지위를 얻으려면 핵 확장에 더 이상 ‘비밀의 만리장성’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 양측의 이견이 없으면 통상 5년간 연장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핵군축을 위해 중국을 포함한 새 협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미 정부의 핵군축 협상 참석 요청에 대해 중국 정부는 하루만인 지난 10일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핵군축은 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문제라는 것이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이에 대해 허치슨 대사는 “중국은 핵군축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며 “그것이 중국 정부가 규칙에 근거한 세계 질서 속에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까지는 중국이 그렇게 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러시아의 핵무기는 지난해 6500개에서 올해 6375개로 125개 줄었다. 미국도 지난해 6185개에서 올해 5800개로 감축했다.
반면 중국의 핵무기는 지난해 290개에서 30개 늘어난 320개로 파악됐다. 290개인 프랑스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제 3위의 핵무기 보유국가가 됐다. 주요 핵무기 보유국가 중 중국만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 연구소의 설명이다. 이어 △영국(215개) △파키스탄(160개) △인도(150개) △이스라엘(90개) △북한(30~40개) 등의 순으로 추정됐다.
이런 와중에 중국 내부에선 핵무기를 더욱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도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달 8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핵탄두를 단기간에 1000기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니포스트(SCMP)는 최근 미·중간 핵군축 문제가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