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뭐하러 1년씩이나 해요? 7개월 정도만 일하면 나오는 실업급여가 알바 월급보다 많은데요. 넉 달 실업급여로 살다가 또 알바 자리 구하면 되죠.”
서울 강서구에서 지난달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둔 A씨(22)의 말이다. 일을 느슨하게 하다가 점주에게 적발돼 해고됐다. 사실 해고당하기 위해 일을 게을리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A씨는 걱정하지 않는다. 가을 무렵이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것보다 많은 실업급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A씨는 2018년, 2019년에 이어 세 번째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16일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도별 구직급여 반복수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1~4월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 중 직전 3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수령한 사람은 2만942명에 달했다. 최근 3년 동안 1년에 한 번꼴로 취업과 실직을 반복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지급된 금액은 2759억원, 1인당 1320만원꼴이다. A씨처럼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가 늘어난 것은 기본적으론 청년 취업난 때문이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실업급여로 받는 돈이 최저임금보다 많아진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실업급여는 월 최소 181만원이며,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은 월 179만5310원이다. 여기에 여러 번 받아도 제한이 없다 보니 A씨처럼 ‘프리터족(특정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 층)’과 실직자를 오가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업급여를 주기적으로 여러 번 받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실태 파악과 함께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6개월 반짝 일하고 넉달간 724만원…실업급여에 중독된 사람들
실업급여는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 실직’을 당한 뒤 적극적인 구직노력을 하면 정부가 그동안 보험료로 걷어 놓은 고용보험기금으로 지급하는 수당이다. 현재 실직 전 6개월(주휴일 포함 유급 180일)을 일하면 실직 후 4개월간 월 최소 181만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올해 최저임금은 주 40시간 기준 월 179만5310원이다. 일해서 버는 돈보다 놀면서 받는 실업급여가 더 많다. 실직자 생활 안정이라는 취지와 달리 정부 정책이 청년들을 특정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족’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잘못된 정책 설계가 고의 실직을 유도하는 ‘실업급여 중독’마저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횟수 제한 없는 ‘화수분’ 실업급여
16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연도별 구직급여 반복수급 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1~4월 실업급여를 수급한 사람 중 직전 3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2만942명에 달한다. 3회 수급이 1만7536명, 4회가 3399명, 5회가 7명이었다. 이들이 지난 3년간 수령한 금액은 각각 2249억원, 509억원, 1억700만원이었다. 지난 3년간 다섯 차례 실업급여를 받은 7명은 1인당 1530만원씩 챙긴 셈이다.
실업급여 반복수급자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직전 3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2018년 3만4516명(3630억원), 2019년 3만6315명(4976억원)에서 올해는 4개월 만에 2만 명이 넘었다. 이런 증가 속도라면 연말께는 6만3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들 모두가 실업급여를 받으면 8276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실업급여 수령에 횟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즉 6개월 남짓 일하고 4개월은 실업급여를 받는 생활을 반복해서 할 수 있다. 실업급여가 되레 실업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실업급여를 한 번 받으면 보험료 납입기간은 다시 제로(0)에서 계산된다”며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고용보험 최소 가입기간이 180일이므로 산술적으로 3년 동안 5회의 반복수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받으려 6개월 일한다
실업급여 반복수급이 늘어나는 것은 무엇보다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지난달 15~29세의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은 26.3%에 이른다. 청년 넷 중 한 명은 실업자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며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기존 3~8개월에서 4~9개월로 늘리고, 실업급여 하한액도 최저임금 인상과 연동해 하루 6만120원(월 181만원)으로 올린 것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결과적으로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서 버는 최저임금(월 179만5310원)보다 놀면서 받는 실업급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반복수급에 따른 보험료 누진적용제도도 없다. 현행 고용보험료는 월평균 임금의 1.6%로, 근로자는 절반인 0.8%를 부담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근로자라면 월 급여의 0.8%(최저임금 기준 한 달 약 1만4500원)를 6~7개월 내고 4개월간 일하지 않아도 기존 급여는 보전받는 구조다. 장기근속 계획이 없는 근로자로선 실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여기에 1년 이상 계약한 근로자에게도 2년차 연차수당을 주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도 실업급여 반복수급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퇴직금과 연차수당에 부담을 느낀 사업주들이 1년 미만 단기계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이 거시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을 넓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수가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일정기간 내 수급횟수 제한 등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반복수급 급증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발 고용위기와 별개로 ‘반쪽짜리 고용정책’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이자 미래통합당 의원(경북 상주·문경)은 “고용안전망을 확충하려면 실직자의 생활 보장과 재취업 촉진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며 “직업훈련, 취업연계 시스템 확충 없이 실업급여 지급액만 올린 ‘반쪽 정책’이 낳은 모럴해저드”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