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내년 전기차(EV) 생산량을 올해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현재 연 10만 대 생산 체제에서 20만 대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사내간담회에서 내년 차세대 전기차(코드명 NE) 양산을 계기로 기존 전기차 모델의 생산량을 줄이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없던 일’로 정리됐다. 급속히 커지는 전기차 시장에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2025년 전기차 생산량을 56만 대로 늘릴 계획이다.
초대형 투자 시작한 車업체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을 놓고 ‘규모의 전쟁’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판매 부진과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조(兆)단위 투자를 하고 있다. 10년 뒤 출시되는 신차 두 대 중 한 대가 전기차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전기차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9조7000억원을 전동화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같은 기간 29조원을 미래차 분야에 쏟아붓겠다고 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은 전동화 분야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전기차 수출량이 월 1만 대를 넘어서면서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2024년까지 330억유로(약 45조원)를 전동화 부문(E모빌리티)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츠비카우 공장을 순수 전기차 공장으로 바꾸는 작업도 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25년까지 200억달러(약 25조원)를 전기차 개발에 쓸 계획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햄트랙 공장을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25년 북미와 중국 시장에서만 100만 대 넘는 전기차를 팔겠다는 목표다.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다른 글로벌 업체들도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분야에 초대형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경쟁사보다 뛰어난 전기차 전용 플랫폼(뼈대)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비용을 감안하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마련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플랫폼을 구매해 전기차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자사 플랫폼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어야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톱5 수준의 자동차 회사들은 단순히 전기차를 팔아서는 생존하기 힘들다”며 “플랫폼을 팔아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회사 확보하라” 비상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제조사 간 합종연횡도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내연기관차의 핵심 부품인 엔진은 자동차 회사들이 만들었지만,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배터리는 ‘내재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배터리 공급이 전기차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배터리 제조사와 손잡지 않으면 배터리가 없어 전기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GM과 LG화학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두 회사는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30GWh 이상 규모의 배터리셀을 양산할 계획이다. GM은 또 혼다자동차와 함께 전기차 2종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같은 일본 기업인 파나소닉과 2017년부터 협업하고 있다. 2022년 미래형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도요타는 중국 배터리 회사인 CATL과도 손잡았다. 중국에 판매하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CATL 배터리를 장착한다. 세계 전기차 1위 업체로 올라선 테슬라는 전통적으로 파나소닉 배터리를 써왔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델3에 CATL 배터리를 쓴다.
현대차는 지금까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써왔지만 향후 삼성SDI와 협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충남 천안 삼성SDI 사업장에서 만나 차세대 배터리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는 LG화학이나 삼성SDI 등 기성 배터리 회사 제품을 쓰면서 신생업체와 손을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형 배터리 회사에 휘둘리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배터리 생산을 내재화하겠다는 의도다. 폭스바겐은 스웨덴 신생 배터리 회사 노스볼트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배터리셀을 생산하고 있다. 벤츠는 독일 회사 아큐모티브와 중국 회사 패러시스 등의 배터리를 쓰고 있다. 포드와 아우디 등은 중국 비야디(BYD)와 협업하고 있다. BMW는 삼성SDI 배터리를 선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수한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능이 뛰어난 배터리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배터리 회사와 자동차 회사의 합종연횡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