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3년부터 모든 상장 주식과 펀드의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주식만 보면 지금은 지분율 1% 이상 또는 10억원 이상 주식의 양도차익에만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손실이 날 경우 다음해 세금에서 이를 반영해 주기로 했다. 정부는 투자자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현재 0.25%인 증권거래세를 대폭 낮추기로 했다.
15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예고한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의 추진 계획이 대체로 정해졌다”며 “의견 수렴 등의 과정을 더 거치긴 하겠지만 2023년 주식 양도차익 전면 과세를 핵심으로 한 개편방안을 이달 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3월 발표한 ‘혁신금융 추진방향’을 통해 증권 관련 세제를 ‘양도세 확대, 거래세 축소’로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외국에선 거래세가 없고 양도세가 주인 데 비해 한국에선 거래세와 양도세를 이중 부과해 시중자금이 증권시장이 아니라 부동산시장으로 몰린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달 말 후속 발표를 통해 방향과 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로 했다. 우선 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을 내년에는 3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2023년엔 3억원 미만의 투자자도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양도차익 과세는 차익과 손실을 연간 기준으로 합산해 이뤄진다. A종목에서 난 이익이 B종목에서 난 손실보다 큰 경우에만 세금을 물린다. 손실 이월제도도 도입돼 올해 난 손실을 내년 이익에서 차감한 다음 내년 양도차익 소득세가 부과된다. 현재 양도차익 비과세인 주식형 펀드도 2023년부터 세금이 매겨진다.
증권업계는 지난해 말 기준 직접투자자가 619만 명, 올해 ‘동학개미운동’ 등으로 늘어난 주식 계좌가 300여만 개, 펀드 계좌가 5월 말 기준 744만 개이며 이 중 중복 투자 등을 제외하면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10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모두가 2023년부터 양도차익 과세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파생상품·채권 내년부터 양도세 물려…주식형펀드도 3년 뒤 과세
주식 양도차익 전면 과세…거래세는 단계적 인하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증권 관련 세금으로 양도세를 부과하지 않고 거래세를 매겨왔다. 미국 일본 유럽 등과는 정반대였다. 이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증권 관련 세제를 바꾸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바꿨다가 주가가 폭락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 답을 할 수가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찔끔찔끔 확대하는 정도에 그쳤다. 변화의 흐름이 불기 시작한 건 2018년 하반기다. 경기침체로 주가가 하락하자 증권업계에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증권거래세 부담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여당이 호응하고 정부를 압박하면서 지난해 증권 관련 세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세법 개정안으로 23년 만의 증권거래세 인하(0.05%포인트)부터 발을 뗐고, 올 상반기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소득 없는 곳에 과세하는 금융세제
한국의 증권 관련 세제가 후진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다. 우선 투자 이익이 발생해도 세금을 안 내는 ‘비과세 구멍’이 많다. 상장주식이 대표적이다. 상장사 지분율 1% 또는 종목별 보유액 10억원 이상(유가증권 기준)인 ‘대주주’만 양도세를 낸다. 이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2만 명으로 전체 상장사 주주(619만 명)의 0.3%에 그친다. 주식 양도세가 비과세이다 보니 주식형펀드도 비과세다. 장외파생상품과 채권 양도차익에도 과세 사각지대에 있다.
반대로 소득이 없는데도 세금을 물리는 불합리함도 적지 않다. 가령 투자자가 상장주식에서 500만원 이득을 내고 펀드에서 1000만원을 잃어 총 500만원의 손실이 나도 주식에서 거둔 500만원에 대해 양도소득세(20~30%)를 물린다. 미국 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이 도입한 금융상품 간 손익통산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는 모든 금융상품의 이익과 손실을 합쳐 이익이 나면 세금을 거둔다. 손실 이월공제 제도도 없다. 이 때문에 같은 금융상품이 지난해에 1000만원 손실이 나고 올해 500만원 이익을 냈다면 올해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이월공제 제도가 있으면 과거 손실을 이월해 현재 손익에서 차감할 수 있다.
주식투자 이익에 대해 증권거래세와 양도세를 다 걷는 점도 단골 지적 사항이다. 증권거래세는 주식 양도가액에 물리는 세금이다. 주식을 500만원에 사서 300만원에 팔아 200만원 손해가 나도 300만원에 0.25%의 세금을 물린다.
금융투자 손실 이월공제도 허용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①금융상품 양도세 비과세 구멍을 메우고 ②모든 금융상품 간 손익통산과 이월공제를 허용하며 ③증권거래세는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상장주식은 내년 대주주 요건을 3억원으로 강화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대주주 요건 강화를 유예해달라는 요구도 있지만 정부는 일단 법이 정한 일정대로 과세 범위를 확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2023년엔 모든 상장사 투자자의 양도차익에 전면 과세할 방침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대주주 요건을 조금씩 넓히는 것은 시장에 부작용만 불러오기 때문에 전면 과세가 바람직하다”며 “다만 준비할 시간이 2년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비과세인 주식형펀드에 대한 과세도 2023년께 시작한다. 채권형·해외주식형 펀드에만 과세하고 있는 빈 구멍을 메우는 것이다. 펀드에 대한 과세 체계는 현재 배당소득세(14%)에서 양도소득세(기본세율 20%)로 전환한다. 장외파생상품과 채권에 대한 과세는 2021~2022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금융세제 선진화의 핵심인 금융상품 간 손익통산과 손실 이월공제도 도입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주식과 파생상품 등 현재 양도세를 과세하는 상품끼리 손익통산을 허용할 계획이다. 새로 과세를 시작하는 금융상품이 생기면 그때그때 손익통산을 허용하는 ‘꾸러미’에 포함시킨다. 다만 펀드는 배당소득세 과세 체계를 양도세로 바꾸는 시점에 손익통산이 허용될 전망이다.
증권거래세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인하한다. 매년 0.05%포인트씩 낮추는 안이 유력하다. 다만 기재부는 “최종적으로 증권거래세를 폐지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