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규제 혁파는 수제맥주처럼

입력 2020-06-15 18:06
수정 2020-06-16 00:13
올 들어 국내 수제맥주 업계가 펄펄 날고 있다. 지난 1~5월 편의점 CU의 수제맥주 매출액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55.6% 급증했다. 전체 매출액 중 국산맥주 비중은 50.3%로 수입맥주(49.7%)를 앞질렀다. 수제맥주 1캔 값도 절반 가까이 싸졌다. 소형 양조장 수는 151개로, 1년 전 114개보다 34% 증가했다.

관련 업계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 혁파 덕분”이라며 환호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올 1월 개정된 주세법 영향이 가장 컸다. 생산원가를 기준으로 매기던 ‘종가세’를 생산량에 따라 매기는 ‘종량세’로 개편한 게 주효했다. 그 결과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원가가 높은 수제맥주의 세금과 판매가격이 낮아졌다.

세제 개편에 이어 지난달에는 기존의 주류 관련 규제들이 대폭 완화됐다. 한 양조장이 다른 제조시설에서 주류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위탁제조(OEM)가 전격 허용됐다. 간편한 캔 제품을 생산할 시설을 별도로 갖출 수 없어 애를 먹던 양조장들이 설비투자 부담 없이 소매시장에 진출하기 쉬워졌다.

첨가재료 규제도 줄었다. 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처럼 질소가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질소를 넣으면 맥주거품의 입자가 더 작아져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 신제품 개발 과정의 제조법 승인과 주질 감정 절차가 간소화돼 이에 소요되는 기간이 반으로 단축됐다.

이 같은 ‘제조 혁명’에 이어 ‘물류 혁명’까지 가능해졌다. 주류 운반 전용차량 외에 택배차량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통신판매도 허용됐다. 이전까지는 몇몇 대형업체만 소매 유통망을 통해 수제맥주를 판매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소규모 양조장에도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각종 규제가 없어지고 세금이 낮아지자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맛과 품질이 좋아졌다는 게 소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매장수는 2018년 500여 개에서 지난달 말 800여 개로 늘어났다. 1세대 수제맥주 회사 플래티넘은 중국으로 이전했던 공장을 국내로 옮기기로 했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현재 600억원대에서 5년 내 4000억원대로 6배 이상 커질 것으로 업계는 점치고 있다. 미국은 1978년 자가양조 금지법을 폐지한 이후 세계 수제맥주 시장을 석권했다. 우리라고 못 할 게 없다. 다른 산업에서도 이렇게 과감하고 혁신적인 규제 혁파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