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애주가의 결심》으로 당선돼 등단한 은모든 작가(사진)가 새 장편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를 펴냈다.
민음사 대표 소설선인 ‘오늘의 젊은작가’의 27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이 소설은 대화가 부족해진 현대인에게 절실한 뭔가를 특유의 리듬감 있는 문체로 건드린다. ‘나’와 외부 세계의 관계를 차분히 설정해나가는 며칠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누군가와 마주보고 울컥하며 대화하고 싶지만 문자메시지와 메일로만 소식을 주고받는 피상적 삶, 즉 대면이 어려워진 현실을 사는 현대인에게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까이에서 함께 산책하고 마주보며 서로의 내밀한 마음을 들여다보자고 말을 건넨다.
소설은 과외 교사로 일하는 경진이 오랜만에 사흘간의 휴가를 얻으면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안에 누워 쉬고 싶은 날이지만 첫날부터 계획이 어긋난다. 전날 계속 말을 걸어왔던 학생 해미가 과외 직후 갑자기 사라지며 경진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결혼 준비에 소식조차 없던 친구 은주는 갑작스레 나타나 한숨어린 고백을 던진다. 그들의 말조차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경진에게 휴가가 시작된 이후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먼저 말을 건다. 남산 중턱에서 길을 잃고 휴대폰을 빌리는 부녀, “언제까지 혼자 그러고 살거냐”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다가 몰라보게 바뀐 엄마, 고향 전주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 열차 맞은편에 앉은 아줌마들, 찜질방에서 만난 세신사까지 모두 경진과 어떤 말을 나누고 싶어한다.
경진은 갑작스레 말을 거는 이들과 함께 걷고, 마주 앉아 이들의 사연을 가만히 들어준다. 서울 남산과 전주 한옥마을 곳곳에서 만난 이들이 경진에게 들려주는 내밀한 사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목소리로 다가온다. 해미의 마음을 세세하게 살필 만한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복잡했던 경진의 마음은 힘들지만 결코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삶을 지속하는 이들과의 속깊은 대화를 통해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해미가 사라진 3일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궁금증을 끝내 풀어주지 않는다. 사흘간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경진은 소설 말미에 다시 만난 해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한테 한번 말해 봐. 천천히 다 들어줄게”라며 먼저 대화를 시도한다. 작가는 달라진 경진의 태도를 통해 우리 모두 서로 이야기와 이야기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