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팰리세이드는 국산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있어 한 획을 그은 모델이다. 높은 가성비(가격대 성능비) 덕에 1년 이상 기다림도 감수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신설된 캘리그래피 트림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한 방을 가지고 있었다.
팰리세이드는 전장·전폭·전고가 4980·1975·1750mm에 이르는 7인승 준대형 SUV다. 축간거리는 3m에 육박하는 2900mm에 달한다. 이전까지 팰리세이드와 같은 크기의 차는 대부분 수입이었고, 가격도 1억원을 오가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팰리세이드 가격은 3300만원대에서 시작해 주문이 몰렸다. 여기에 북미 수출까지 더해졌다. 지난해 팰리세이드는 국내 5만2299대, 북미 5만5215대가 팔렸다.
북미 수출까지 이뤄지며 팰리세이드 출고 대기 기간은 1년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현대차 노조에서 논의를 거쳐 증산을 한 뒤에야 출고대기 기간이 줄었지만, 현재도 트림, 색상 등에 따라 6개월을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도로 위를 달리는 팰리세이드는 앞으로도 지속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자동차라도 너무 많이 '양산'되면 매력을 잃는 경우가 있다. 올해들어 지난달까지 판매된 팰리세이드는 2만4134대, 누적으로는 총 7만6000여대가 국내 시장에 유통됐다. 팰리세이드 차주들은 '흔한 가성비 차'가 되어버린 자신의 차에 개성을 더하고자 크롬 장식을 붙이는가 하면 도색을 하는 등 튜닝 작업을 시도하곤 한다.
새로 출시된 최상위 트림 캘리그래피는 가격 인상은 억제하면서도 기존 팰리세이드 옵션 사양을 기본화하고 전용 디자인을 채택해 차별화된 디자인과 고급감을 갖췄다. 기존 팰리세이드 차주가 아니라면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차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팰리세이드를 찾던 소비자에게는 작지만 큰 차이로 다가오는 차별화 요소다.
국내 매체 최초로 갓 출고된 팰리세이드 3.8 AWD 캘리그래피 모델을 시승했다. 이 모델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뒤 범퍼, 휠 등에 전용 디자인을 채택해 기존 모델과 외관을 차별화했다. 일반 모델과 달리 측면 몰딩도 차체와 같은 색을 적용했다.
단순한 빗금 모양이던 테일램프는 삼각형 모양으로 바뀌었고, 캘리그래피 전용 색상도 마련됐다. 트렁크에도 크롬 장식이 들어갔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 처럼 소소한 차이가 모이며 기존 모델과는 차별화된 고급감을 만들었다.
실내는 명확한 고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트와 도어 트림 등에 퀼팅 나파 가죽이 적용돼 편안한 착좌감은 물론 '보는 맛'도 느낄 수 있었다. 밋밋한 직물 재질이 자리잡았던 천장은 스웨이드로 마감돼 단정한 고급감이 느껴졌다. 스웨이드 내장재는 윤기가 반질대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 같은 특유의 촉감도 선사했다. 스티어링 휠은 반펀칭 가죽으로 마감됐다.
일반 모델과 기능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12.3인치 풀 LCD 클러스터다. 기존 팰리세이드는 7인치 LCD 클러스터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바늘이 달린 아날로그 클러스터가 탑재됐었다. 큼직한 바늘이 높은 시인성을 제공하지만,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기엔 다소 갑갑함이 있었다.
팰리세이드 캘리그래피에 탑재된 12.3인치 풀 LCD 클러스터는 주행 모드에 따라 화려한 효과를 내고 현재·평균 연비, 연료 잔량, 주행 상황이나 작동하고 있는 기능 등에 대한 여러 정보를 제공한다.
전방주시를 하면서 속도, 경로 등의 정보를 볼 수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탑재됐고, 최근 운전자들 사이 인기가 높아진 엠비언트 라이트도 장착됐다. 뒷좌석에는 수동식 도어커튼도 달려 더욱 안락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새로 탑재됐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기능도 있다. 팰리세이드 캘리그래피에는 주유소·주차장 등의 요금을 차 안에서 결제할 수 있는 '현대 카페이'가 적용됐다. 현대차는 하반기부터 이 기능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주행 자체는 기존 팰리세이드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에코, 컴포트, 스포츠, 스마트 주행모드를 제공하며 다양한 노면에서 상황에 적합한 구동력을 발휘하는 '험로 주행 모드(터레인 모드)'도 선택 가능하다. 전방충돌방지보조(FCA), 운전자 주의 경고(DAW), 하이빔 보조(HBA) 등 첨단 기능은 물론 차로유지보조(LFA),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 등 반자율주행 기능도 탑재됐다.
다만 주행 중 들려오는 소음은 일반 모델에 비해 다소 줄었다. 제네시스 SUV GV80에 적용된 것과 같은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능이 탑재된 덕이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은 노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마이크로 수집하고, 이와 반대된 소리를 틀어 상쇄시키는 기술이다. 12개의 스피커를 지원하는 크렐 사운드 시스템과 결합되면 앞좌석은 물론 뒷좌석에서도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음악을 주행 중에도 즐길 수 있다.
대배기량에 사륜구동 모델이었지만, 약 200km 시승 평균 연비는 13.9km/L를 기록, 공인 복합 연비 8.9km/L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팰리세이드 3.8 AWD 캘리그래피의 가격도 4802만원으로 책정, 다양한 옵션이 기본 탑재되고 차별화된 디자인 요소가 더해졌음에도 5000만원 이내를 유지했다.
도심 주행 위주라면 전륜구동 모델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지다. 팰리세이드 3.8 캘리그래피 가격은 AWD 모델보다 낮은 4567만원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영상= 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doyt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