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조업 고용 급감, 대량실업 경고다

입력 2020-06-14 18:16
수정 2020-06-15 00:07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경제도 기초가 튼튼해야 위기에 강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살얼음을 걷는 고용시장은 지난 5월 공식 실업자 127만8000명, 공식 실업률 4.5%, 체감 실업률 14.5%로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었다. 공공일자리 덕분에 60대 취업자만 증가했고 나머지 전 연령층 취업자는 감소했다. 취업자라도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554만6000명, 취업자의 5분의 1 정도로 대폭 늘어 1982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아졌다.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음식·숙박 등 대면 서비스업의 고용감소폭이 줄고, 고용유지정책에 힘입어 실업 직전 단계인 일시 휴직자가 감소했을 뿐이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것을 고용이 호전될 조짐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희망일 뿐이다.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제조업의 취업자 감소폭이 3월 2만3000명, 4월 4만4000명, 5월에 5만7000명으로 커졌다. 대면 서비스업의 고용감소는 코로나19에 의한 일시적인 문제로 돌릴 수 있으나 제조업 고용감소는 그럴 수 없다. 제조업은 고용의 전후방 효과가 크고 고용감소는 세계 경기침체와 수출 감소 등 구조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제조업의 고용감소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언해놓고도 제조업을 죽이는 정책을 쏟아냈다.

제조업의 성쇠는 경제성장과 고용을 좌우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각국 정책을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은 세계 금융위기의 돌파구를 제조업 활성화에서 찾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여기에 전력투구했고 앙숙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더 강화했다. 그 덕분에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딜로이트의 평가에 의하면, 2010년 4위에서 2020년 1위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실업률은 10%에서 3%대로 뚝 떨어졌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4차 산업혁명에 온 힘을 쏟았다. 그 덕분에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은 같은 기간 8위에서 3위로 올라갔고, 실업률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10%에서 3%대로 낮아졌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정반대다.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미국과 독일보다 실업률이 낮았으나 정책 실패로 역전됐다. 제조업 강국이던 이탈리아는 규제강화와 강성 노조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졌고 복지재정지출만 급증했다. 실업이 증가하자 재정확대로 경기를 부양하려 했으나 경제의 기초가 무너졌기에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재정위기만 일으켰다. 그 결과 실업률은 6%에서 12%로 올라갔다. 스페인은 이탈리아보다 더 심각하다. 실업률이 8%에서 25%로 3배로 뛰었고 이후에도 14%로의 회복에 그쳤다. 이탈리아보다 관광 등 서비스업 비중이 더 크고 제조업 비중은 더 낮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과 독일이 아니라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길을 걷고 있다. 고용을 호전시키려면 문 대통령은 제조업 르네상스에 정권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미국은 4월에 실업이 급증했지만 5월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독일은 실업률이 조금 올랐을 뿐인 이유도 제조업 중시정책 덕분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재정이 흑자였지만 보편적 복지를 따라간다고 돈을 펑펑 쓰다가 일거에 재정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단기 정책에 매달리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소홀히 하다가 코로나19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문 정부가 좋아하는 고용유지, 공공일자리, 노동조합 특권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처럼 경제를 자해하고 고실업 국가로 가는 길이다. 반면, 문 정부가 외면한 경쟁력 제고, 규제개혁, 직업훈련은 미국과 독일처럼 경제를 살리고 저실업 국가로 가는 길이다. 지금이라도 정도를 밟아야 한다. 한국 경제의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나쁜 정책부터 당장 폐기해야 한다.